어둠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며칠 동안 채워졌던 시간의 무게를 조용히 내려놓고 있다. 다시 시작되는 하루 앞에서 나는 무엇을 더 채울 것인가보다 무엇을 비워 둘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연휴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나누었고 웃음과 대화와 음식이 식탁을 가득 채웠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일정과 약속과 해야 할 일들이 빠르게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문득 ‘여백’이라는 단어를 붙들어 보며 바쁨 속에서도 남겨 두어야 할 공간에 대해 스스로에게 설명한다.
여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시간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흡수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리하기 위한 숨 쉴 틈에 가깝고 그래서 이 단어는 게으름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
여백이 없으면 우리는 쉼조차 소화하지 못한 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버리고 마음은 점점 거칠어지기 쉽다.
나는 연휴 동안 충전되었던 감정들이 너무 빨리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의 일정 사이에 작은 틈을 의도적으로 남겨 두려 한다.
그 틈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몇 분의 시간일 수도 있다.
여백은 속도를 늦추는 선택이지만 결코 뒤처지는 행위가 아니며 오히려 더 멀리 가기 위해 필요한 준비 동작이라는 점에서 삶의 전략에 가깝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이 채우는 것이 성실함이라고 착각하지만 적절히 비워 두는 일이야말로 균형을 지키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연휴의 따뜻함을 떠올리며 그 시간들이 내 안에서 충분히 머물 수 있도록 서두르지 않으려 하고 그 머무름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바로 여백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여백이 있어야 기억도 감정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다음 움직임을 준비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보냈거나 홀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 연휴. 상반된 의미였음에도 이 연휴를 조급하게 정리하지 않으려 하며 그 기억들이 우리 안에서 천천히 숙성되기를 기다린다.
여백은 그 숙성을 가능하게 하는 시간이며 관계의 온기를 오래 유지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일상은 다시 분주해질 것이고 나는 해야 할 역할과 책임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겠지만 그 안에서도 작은 여백을 남겨 두는 태도는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 여백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하고 타인을 향한 시선을 부드럽게 유지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여백은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하여 나는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 잠시 앉아 지난 며칠의 감정을 정리하며 무엇이 고마웠고 무엇이 아쉬웠는지를 차분히 짚어 본다.
그렇게 돌아본 뒤에야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채우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비워 두는 일에는 서툴고 그래서 때로는 과잉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하지만 여백을 허락하는 순간 삶의 호흡은 조금 더 길어진다.
나는 이 아침에 일정표를 펼쳐 보며 일부러 모든 칸을 빽빽하게 채우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 빈칸이 나의 숨통이 될 것임을 스스로 인정한다.
여백은 생산성을 낮추는 장애물이 아니라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오늘 나는 여백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두고 다시 시작되는 일상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려 하며 채움과 비움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여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여백은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이자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완충 지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