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 여섯 시. 아직 어둠의 기운이 베란다 유리창에 얇게 붙어 있다. 계절은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지만 공기에는 어딘가 풀리는 기색이 있다.


늘 하던 대로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놓고 책장을 펼친다. 연휴의 느슨함이 지나가고 다시 일상의 박자가 돌아온 아침이다.

%EC%9D%B4%EB%B0%98%EC%9D%BC%EB%A6%AC%EC%B9%98%EC%9D%98%EC%A3%BD%EC%9D%8C_(9).png?type=w1

지난 주 잠시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선택했던 러시아 청년의 범죄, 고뇌, 의심, 불안을 통과했다.


약 천 페이지의 묵직한 사유 속을 걸으며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그 깊이가 내게는 작은 근육처럼 남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묵직함을 치유하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 김민전 작가의 <혹시 모른 내마음>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오늘, 한 문장이 나를 멈추게 했다.

“어머니는 ‘딸이 나를 버렸다.’라고 말씀하셨다. 딸과의 대화에서 ‘버렸다’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딸은 ‘엄마가 무시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무시’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이 당신을 버렸다고 했고, 딸은 엄마의 뜻을 들어주었다고 했다.


딸은 엄마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했고, 어머니는 딸을 위해 헌신했다고 했다.”

혹시모른 내마음 중에서 - 68page


무시.

1. 사람이나 사물, 의견 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깔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김.

2. 보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거나 못 본 체함.


사전적 정의를 한참 바라보았다. 같은 문장 안에 상처와 해결의 실마리가 함께 들어 있었다. 무시는 상대를 낮추는 태도이지만, 동시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것. 그 사이에서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EC%96%B4%EB%A6%B0%EC%99%95%EC%9E%90_(23).png?type=w1

우리는 관계 속에서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가장 격렬해진다.

분노는 종종 그 단어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건의 가해자들이 “무시당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 단어가 얼마나 큰 폭발력을 가지는지 실감하게 된다.


물론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만큼 무시라는 감정이 인간의 자존을 깊이 건드린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 질문을 새벽의 적막 속에 던져본다.


혹시 그것은 내가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의 그림자는 아니었을까. 혹시 나는 상대의 말보다 내 기대를 먼저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머니와 딸의 대화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가 마음속에서는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의 해석에 갇히는지를 보여준다.

%EC%98%81%EC%83%81_(76).png?type=w1

무시는 개념으로 보면 타인의 태도다.

그러나 감정으로 내려오면 나의 해석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날에는 스쳐 지나가고, 어떤 날에는 깊게 박힌다.


결국 그 파급력은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투병의 시간을 지나오며 이 사실을 조금씩 배웠다.


병원 대기실에서 무심하게 던져진 말 한마디가 나를 흔들던 날도 있었고, 같은 말을 그저 흘려보낼 수 있었던 날도 있었다. 상황은 비슷했지만 내 마음의 위치가 달랐다.


실천이라는 자리로 내려오면 질문은 더 단순해진다.

martyseb-wedding-5365377_1280.jpg?type=w1

나는 모든 무시를 바로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어떤 것은 흘려보내야 하는가.


사전의 두 번째 정의가 다시 떠오른다.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것. 나는 그것이 비겁함이 아니라 때로는 지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자극에 반응하는 삶은 너무 쉽게 지친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작은 무시는, 오히려 나를 살리는 태도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상대를 낮춰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내가 상대를 무시하지 않기 위해, 동시에 나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누군가의 말이 나를 정의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는 일이 내가 배워가는 무시의 또 다른 얼굴이다.


새벽의 공기가 조금씩 밝아진다. 나는 다시 책장을 덮고 창밖을 본다. 세상은 여전히 각자의 오해와 해석 속에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나 또한 완벽하게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무시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품어본다.


나를 낮추는 말에 무너지는 대신,

그 말을 조용히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jetratull-dolls-3808465_1280.jpg?type=w1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각자의 마음을 통해 해석할 뿐이다.


그래서 때로는 상처가 생긴다. 그러나 그 상처의 깊이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무시는 타인의 태도에서 시작되지만, 그 여운은 나의 선택으로 마무리된다.


나는 오늘 무시라는 단어를 통해 자존과 거리두기를 동시에 배웠다.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 애쓰기보다, 어떤 것은 흘려보내는 용기.


그 용기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무시’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무시는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나를 지키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이전 14화‘여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