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아직 푸른 어둠이 남아 있고 겨울의 끝과 봄의 초입이 겹쳐 있는 계절이라 공기는 차지만 어딘가 느슨하다. 나는 늘 그렇듯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리고 책을 펼친다.
오늘 내 시선을 붙잡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길들이고 길들임 받는다.
길들임을 받고 길들인다.
어떻게 길들이고 받는 관계인지에 따라 상대성 관계를 이룬다.”
혹시 모른 내마음 중에서 - 93page
길들임.
1. 어떤 존재를 특정 방식에 익숙하게 만드는 행위나 상태.
길들임의 사전적 정의는 굉장히 중립적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 닿는 길들임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순응과 저항이 있고 보호와 통제가 함께 있다.
길들임은 개념으로 보면 습관이다. 반복을 통해 몸에 배게 만드는 힘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길들여지고 예절에 길들여지고 사회의 규칙에 길들여진다.
그렇게 길들여진 덕분에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길들임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그러나 감정으로 내려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길들임은 때로 나를 작게 만든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는 법을 배우고 갈등을 피하는 법에 익숙해질수록 나는 점점 무난한 사람이 된다.
무난하다는 말은 편안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자칫 나의 모서리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투병의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또 다른 길들임을 경험했다.
병원 복도에서의 기다림.
주사와 약에 익숙해지는 몸.
불안을 다루는 방식에 점점 능숙해지는 나 자신.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웠던 것들이 반복되면서 일상이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길들임이었다. 몸이 고통에 적응하듯 마음도 상황에 적응한다.
그런면에서 보면 길들임은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에 길들여질 것인지, 세상의 속도에 무작정 길들여질 것인지 아니면 나만의 리듬에 익숙해질 것인지.
지금 반복되는 새벽 독서와 글쓰기는 내가 나를 길들이는 방식이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스스로 선택한 훈련이다. 그 훈련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길들임은 관계 속에서도 작동한다.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길들인다. 상대의 말투에 익숙해지고 기분의 결을 읽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상대의 기준에 맞추며 스스로를 조정한다.
그 조정이 배려일 때도 있지만 두려움일 때도 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의 세계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건강한 길들임이 아니다.
오늘 길들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그 경계가 궁금해졌다. 과연 어디까지가 성장이고 어디서부터가 소멸일까.
철학적으로 바라보면 인간은 길들여지는 존재다. 우리는 언어에 의해 사고하고 문화에 의해 행동한다. 길들임에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에 길들여질지 스스로 선택하는 힘일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끌려가는 길들임은 나를 약하게 하지만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길들임은 나를 확장시킨다.
나는 길들임을 훈련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본다.
훈련은 의도가 있다.
반복은 방향을 가진다.
내가 매일 새벽 책을 펴는 이유도
그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세상의 소음에 길들여지기보다 사유에 길들여지고 싶다. 두려움에 길들여지기보다 용기에 길들여지고 싶다.
나를 낮추는 말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나를 돌보는 습관에 길들여지기를 바란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오고 단지의 나무들이 어둠을 벗고 윤곽을 드러내는 새벽,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한다.
문득 길들임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자유는 아무것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에 익숙해질지 스스로 결정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길들임’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길들임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