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새벽 여섯 시.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고 눈이 예보된 창밖의 하늘은 잿빛과 남색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짧은 명상 뒤 서재의 책상 앞에서 앉아 펼친 한 권의 책은 마치 내가 그녀의 상담실 소파에 앉아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기다리는 듯 초조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오늘 <혹시모른 내마음>의 김민전작가는 내게 이런 말을 전해주었다.

“나도 알고 타인도 아는 나

나는 알고 타인은 모르는 나

나는 모르지만, 타인은 아는 나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나.

모두 매력 있는 ‘나’이니만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나를 보물 상자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곳은 미지의 영역으로 ‘가능성’이라는 보물이 들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모른 내마음 중에서 - 124page



가능성.

1.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이나 정도.

2. 장차 발전하거나 변화할 수 있는 잠재적인 힘.


우리는 가능성을 너무 자주 먼 미래의 언어로만 사용한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무엇처럼 말한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불확실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가능성을 믿는다는 말은 어딘가 모르게 위험해 보인다.


확률이 낮으면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먼저 떠오른다. 가능성은 어느새 도박과 비슷한 단어가 되어 버린다.


나는 그 오해가 오래된 습관 같다고 느낀다. 가능성은 확률표 위에 놓인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 안에 들어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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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흙 속에 묻혀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듯,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무한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힘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힘을 바깥에서 찾는다. 더 좋은 조건과 더 확실한 정보 그리고 더 높은 확률. 요즘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주식 열풍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주가가 오를 가능성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보다 당장의 가격이 어디까지 튈지에 마음이 쏠린다.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미래의 숫자로 축소된다.


나는 투자를 하고 있지 않지만 그 흐름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가격의 변동이 아니라 존재의 확장일지도 모른다.


기업도 사람도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고 반복과 축적과 방향이 쌓여서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과정보다 결과의 순간에 더 예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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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가능성에 집중하는 동안

자랄 가능성은 보지 못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삶의 어느 시기에는 내 가능성을 외부의 평가로만 확인하려 했다.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가능성도 사라진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몸이 약해졌다고 해서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속도가 느려졌을 뿐 방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늘 조금 더 걷는 일.

오늘 조금 더 읽는 일.

작은 반복이 내 안의 에너지를 다시 깨웠다.


가능성은 불확실한 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구조다. 숨을 쉬고 생각할 수 있고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사실들이 가능성의 증거다.


그런데 우리는 그 증거를 쉽게 지나친다. 대신 아직 오지 않은 결과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위축시킨다.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은 미래에 베팅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를 확장하는 일이다. 나는 이 문장을 쓰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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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열어보기를 포기해 버린 상자는 없는가.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나의 미지의 상자를

불안의 쇠사슬에 묶어만 두고 있지는 않은가.


새벽은 늘 비슷해 보이지만 매일 조금씩 다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밝은 빛이 있고 어제보다 조금 덜 차가운 공기의 그 미세한 차이가 계절을 바꾼다.


가능성도 그와 닮았다. 거대한 사건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차이로 시작된다.


오늘 한 문장 더 읽고 한 번 더 미소 짓고 내가 하는 사소한 선택이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나는 가능성을 더 이상 확률의 단어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 안에 이미 깃들어 있는 힘이다.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힘. 숫자의 오르내림과 상관없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 그 힘을 잊지 않는 것이 어쩌면 이 시대에 더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창밖이 서서히 밝아온다. 어둠은 아무 소리 없이 물러난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한다.


나는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가능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의 안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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