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동반은 서로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행이다.

by 마부자

새벽 여섯시.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의 공기가 베란다 난간에 가볍게 걸려 있다. 밤의 어둠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고, 건물들 사이로 희미한 푸른빛이 번지고 있다.


이젠 이 시간이 낯익은 세상이 된 듯 느슨해진다. 차 한 잔과 책상 그리고 한 권의 책을 다시 펼친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한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 이 사람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인생의 방향 전환을 한다. 리스크가 있는 길을 걸어간다. 혹은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하지만, 역시 두려워서 지금까지대로 살아간다.


아무래도 좋잖아, 하고 생각했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정답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길을 선택하는가보다 선택한 길을 자신들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살아갈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 그 길을 걸을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요일의 편지 중에서 - 236page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이야기, 리스크가 있는 길을 걷는 이야기, 혹은 두려워서 지금까지의 삶을 그대로 이어간다는 이야기.


그 문장을 읽다가 나는 문득 ‘동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동반은 사람이나 현상이 서로 함께 따르거나 같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떠나서도 묘한 울림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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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생각보다 깊고 넓다.


무엇보다 이 단어는 삶의 방향을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 삶의 방식을 설명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그 길을 걷느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잠시 동반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처음에는 동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러나 곧 두 단어의 결이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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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은 같은 길을 함께 걷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동반은 조금 더 깊다.

동반에는 서로의 삶이 엮여 있다는 감각이 있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의 삶을 함께 짊어진다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동반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단순히 옆에 서 있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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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쁠 때뿐 아니라 어려울 때도 함께 있다는 의미,

서로의 선택과 흔들림을 곁에서 지켜보는 관계,

그리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도

같은 시간을 견디는 관계.


그런 모습이 동반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삶을 돌아보면 사람은 대부분 혼자 결정을 내리고 혼자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결국 나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내가 걷는 길 옆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발걸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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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가족이고, 때로는 친구이며,

때로는 오랫동안 같은 시간을 견뎌온

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내병은 개인의 몸에서 시작되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은 결코 혼자의 일이 아니었다.


병실에서 흘러가는 긴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 내 곁에 있어 주었고, 조용히 기다려주었고, 다시 일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시간을 함께 나누어 주었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은 혼자서의 강함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동반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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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 길을 누구와 함께 걷느냐는 질문이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다.

같은 속도로 걷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시간을

함께 건너고 있다는 감각이다.


그것이 있을 때 사람은 조금 덜 두렵고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가끔 인생을 너무 거창한 선택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길이 맞는지, 어떤 선택이 옳은지, 지금의 결정이 미래를 바꿀 것인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인생의 방향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길 위에서 어떤 사람과 시간을 나누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인생의 길은 결국 혼자 걷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와 함께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이라는 것을.


그래서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기보다 동반의 과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수요일의 편지 | 모리사와 아키오 - 교보문고

모리사와 아키오의 <수요일의 편지>를 새벽에 펼치며 삶은 결국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느냐에 더 가까운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동반’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동반은 서로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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