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희생’이란 나를 지키면서 타인을 위해 일부를 내어주는 균형이다.

by 마부자

새벽 여섯시.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의 하늘은 어둠과 빛이 잠시 겹쳐 있는 색을 하고 있다.


밤이 완전히 물러난 것도 아니고 아침이 완전히 시작된 것도 아닌 이 시간에는 생각이 조금 더 또렷해진다.


붉은 등대가 보이는 작은 우체국으로 누가 받을지 모를 수신 없는 나의 이야기를 편지에 적어 보내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한 문장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꿈을 포기하겠다는 ‘자기 희생’이야말로 정의라고 믿었다. <중략>


자기 희생 다음에 진정한 행복이 있을까?

자기 인생을 무시하고 있는 내가

가족을 정말로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수요일의 편지 중에서 - 274page





사전적 의미의 희생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더 큰 가치나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이 새벽 문장에서 느낀 희생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정의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희생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남을 위해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남을 위한 희생을 하는 것은 어쩌면 오만일 수도 있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채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주관성 결여에서 나오는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잠시 그 문장을 다시 읽어보았다. 꿈을 포기하는 것을 정의라고 믿었던 그리고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사람.


그 흔들림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질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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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희생 다음에 진정한 행복이 있을까.

자기 인생을 무시하면서

가족을 정말로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깊다.

우리는 희생을 미덕으로 배워왔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어떤 사람은 조직이나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삶을 뒤로 미룬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대개 성실하고 책임 있는 삶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생을 쉽게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희생하지 않는 삶을 이기적인 삶처럼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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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희생을 하나의 정답처럼 배워온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욕망을 줄이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는 언제나 존중받는 가치였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잠시 미루거나 포기하는 일을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이 책임감 있는 삶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희생이라는 단어에는 미묘한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자신을 지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선택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뒤로 미루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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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선택이 나의 삶을 점점 더

좁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내가 포기한 것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정말로 서로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희생이라는 말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종종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함께 들어 있다.


포기해야 했던 꿈에 대한 아쉬움, 말하지 못했던 욕망,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를 충분히 존중하지 못했다는 후회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희생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신중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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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이 아름다운 순간도 분명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선택으로 이어질 때는

다시 한 번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나는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몸이 아프다는 사실은 많은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무엇이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자신을 완전히 지우는 방식의 희생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타인의 행복도 온전히 바라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나의 삶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은 희생이라기보다 소모에 가까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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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삶을 유지한 채 이루어지는 선택은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어쩌면 희생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을 존중하면서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나누는 일은 따뜻한 희생이지만, 자신의 삶을 무시한 채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선택하는 삶은 다른 이름의 포기일 수도 있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진다. 건물 사이로 햇빛이 번지기 시작한다.


나는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삶은 희생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조금씩 깊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야말로 진짜 의미의 희생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오늘 ‘희생’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희생이란 나를 지키면서 타인을 위해 일부를 내어주는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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