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욕구는 단순히 마음의 요구가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다.

by 마부자

새벽 공기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시간. 봄이 오는 문턱에서 잠시 베란다 창문을 열어두니 밤의 기운이 조금 남아 있는 바람이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어둠과 빛이 서로 자리를 넘겨주고 있는 시간이다. 나는 늘 그렇듯 차 한 잔을 준비해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작년에 읽어 두었던 책 한 권을 다시 펼친다.


오늘 펼친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창순 교수가 쓴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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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대한 우리의 욕구에는 두 얼굴이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고 싶다는 욕구와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자신을 억누르려는 욕구가 그것이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 21page


욕구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을 얻거나 이루고자 하는 마음의 요구였다.


사전적 의미를 알고 생각해보니 욕구는 아주 현실적인 단어였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움직임에 가깝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고 피곤하면 잠을 자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마음 또한 무언가를 원하고 향하고 싶어 한다.


그 움직임이 바로 욕구다. 그래서 욕구는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였다.


여기서 한 가지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욕망이다.

욕구와 욕망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결이 조금 다르다.


욕구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마음의 필요라면 욕망은 그것이 더 커지고 강해져 어떤 대상을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상태에 가깝다.


욕구는 인간에게 기본적인 움직임이지만 욕망은 때로 그 움직임을 지나치게 확대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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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욕구는 삶을 유지하는 힘이지만

욕망은 때로 삶을 흔들기도 한다.


그러나 둘 다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향해 움직일 때 우리는 그것을 욕구라고도 하고 욕망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가 늘 단순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직장과 사회라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욕구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마음의 움직임이 아니라 조절해야 하는 감정이 된다.


마음은 자유롭게 말하고 싶어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마음이 생긴다.


상대가 상처받지 않을까. 관계가 어색해지지 않을까.

나를 좋지 않게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사람의 욕구에는

늘 두 개의 방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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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밖으로 향하는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안으로 눌러 담는 욕구다.


마음은 말하고 싶어 하지만 이성은 멈추라고 한다. 감정은 표현하고 싶어 하지만 경험은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에서 작은 협상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욕구를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욕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이기적인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배려해야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이 늘 앞섰다. 그래서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할지 먼저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항상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욕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쌓인다.


말하지 못한 말들은 마음속에 남아 조용히 자리를 넓혀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피로가 되기도 하고 서운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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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는 결국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아직 삶을 향해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어쩌면 이미 마음이 지쳐버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욕구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욕구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일 것이다. 욕구를 무조건 밖으로 터뜨리는 것도 지혜로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계속 억누르며 살아가는 것도 건강한 삶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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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는 표현과 절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때

비로소 건강한 모습이 된다.


내가 병을 겪으며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도 바로 이런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중에는 말하지 못한 마음들도 있었다. 더 솔직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마도 그것 역시 하나의 욕구였을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조금 더 진솔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 더 가까이 두고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조용히 생겨났던 것이다.


욕구는 때로 인간을 흔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움직이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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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욕구 때문에 갈등하기도 하지만

욕구 때문에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새벽 창밖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어둠이 물러난 자리에 희미한 빛이 번지고 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오늘의 단어를 다시 떠올린다.


어쩌면 욕구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작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

삶이 아직 나를 부르고 있다는 신호.


그래서 나는 욕구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조금 더 이해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욕구’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욕구는 단순히 마음의 요구가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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