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란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설명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삶은 설명 없이 시작된다.

by 마부자

봄이 다가온 새벽. 밤의 어둠은 이제 거의 물러가고 베란다 너머의 하늘에는 옅은 빛이 이미 번져 있다. 차가운 겨울 공기 대신 조금 부드러워진 바람이 창문 틈으로 조용히 들어온다.


세상이 막 깨어나려는 이 시간은 여전히 고요하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준비해 책상 앞에 앉는다. 다시 펼친 한 권의 책속에서 오늘의 문장을 눈에 넣었다.

“인간은 사용설명서 없이 태어난다. <중략>

인간은 달랑 내 몸 하나만 갖고 세상으로 나온다.


따라서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나를 사용해야 하는지 알 길을 모른 채 우리 인생의 드라마가 써지는 것이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




사전적 의미만 놓고 보면 설명이라는 단어는 매우 단순하다. 어떤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 주는 것. 어떤 상황을 납득할 수 있도록 풀어 주는 것.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서 설명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설명을 찾고 설명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그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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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나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그 질문의 끝에는 언제나 하나의 바람이 있다.

설명을 찾고 싶은 마음이다.


요즘 시대는 우리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이유 없는 결정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이유를 말해야 하고 어떤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그 과정이 설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한 설명을 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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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설명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살아가며 겪는 시간과 지나온 경험 속에서 뒤늦게 의미를 발견하며, 그렇게 하나씩 삶의 설명을 써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건을 겪고 나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시간과 경험에 의미를 정리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조금씩 마음을 정리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의 많은 일들은 사실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설명을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사건이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우연처럼 시작되기도 하고 어떤 일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때로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계속 설명을 만들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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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리는 과거의 일을

돌아보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때는 몰랐던 이유를 나중에 이해하기도 하고 그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일들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납득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가끔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있었다.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병이라는 경험을 마주한 이후 그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는지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천천히 살아가게 되었고 이전보다 조금 더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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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나 명확한 설명을 가지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의미가 드러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명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설명은 삶을 시작하기 전에 주어지는 안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살아가며 뒤늦게 만들어지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해한 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경험을 쌓고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삶을 이해하게 되는 존재다.


새벽의 빛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 창밖의 하늘이 이제는 완전히 색을 바꾼 하늘을 보며 한 모금의 차를 넘기고 오늘의 단어를 다시 떠올린다.


나는 ‘설명’이란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설명을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삶은 설명 없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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