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대답이란 질문을 잠시 멈추게 하는 작은 쉼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by 마부자


이제 새벽 6시는 봄의 기운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새벽이다. 어둠이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하늘의 절반 이상이 이미 밝은 빛으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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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흔적은 옅은 그림자처럼 남아 있을 뿐이고 창밖의 공기는 겨울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는 늘 그렇듯 차 한 잔을 준비해 책상에 앉는다.


이번 주부터 나는 고명환 작가의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를 다시 읽기로 했다.


작년에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조용히 확인해보고 싶었다.


같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은 사실 같은 책을 읽는 일이 아니라 다른 나를 만나는 일에 가깝다는 것을 요즘 배우고 있다.

“우리는 대답의 세상이 아닌 ‘질문의 세상’을 살아야 한다.


대답의 세상은 끌려가는 세상이고,

질문의 세상은 ‘내가 끌고 가는 세상’이다.


내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대답보다 질문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이유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중에서 - 25page


이 문장을 읽으며 처음에는 ‘질문’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늘 질문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 나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적어둔 적이 있었다.


질문이란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답을 가능하게 하는 생존의 물음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질문보다 ‘대답’이라는 단어가 오래 남았다.

아마도 질문은 늘 생각해왔지만 대답은 깊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전에서 말하는 대답의 의미는 질문이나 요구에 대해 말이나 행동으로 응하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정의다.


하지만 삶 속에서 대답이라는 단어는 훨씬 복잡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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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에서 늘 대답을 요구받으며 살아왔다.

시험지에는 질문이 적혀 있었지만 사실 우리가 해야 했던 일은 질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맞히는 일이었다.


틀린 대답은 감점이 되었고 맞는 대답만이 인정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질문하는 사람보다 대답하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며 자라왔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질문보다 대답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정답을 찾아 그곳에 도착하면 된다.


생각보다 훨씬 안전한 방식의 삶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대답을 얻는 순간 생각은 멈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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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라는 말 뒤에는 더 이상의 질문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대답은 편안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상태이기도 하다.


투병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 질문들에는 사실 쉽게 얻을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것이 두려웠다.

사람은 질문보다 대답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조금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답이 없는 질문 속에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질문이 사라질 때 삶의 방향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질문에 대해 잠시 대답을 얻는다.

그리고 그 대답으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러나 삶은 다시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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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답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

잠시 도착한 작은 정류장 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얻었던 대답들도 대부분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대답은 시간이 지나며 틀린 것이 되었고 어떤 대답은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어떤 대답은 오히려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대답을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대답은 삶이 건네주는 잠시의 이해일 뿐이다.


그 잠시의 이해가 모여

사람은 조금씩 더 넓은 질문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새벽 나는 차가 조금 식어가는 책상 앞에서 어쩌면 우리는 해답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답과 질문 사이를 걸어가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는 ‘대답’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대답이란 질문을 잠시 멈추게 하는 작은 쉼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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