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지는 새벽. 하늘의 어둠은 거의 사라졌고 밝은 빛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밤이 물러나는 속도보다 빛이 번져가는 속도가 더 빠른 아침이다.
서재의 창 너머의 공기는 아직 차갑지만 겨울의 날카로움은 사라졌다.
늘 하던 것처럼 차 한 잔을 준비해 책상 앞에 앉았다.
독서를 통해 삶을 통째로 바꾼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나도 그 삶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 본다.
“믿고 읽어라. 그리고 서두르지 마라. 위대한 생각은 책 몇 권 읽는다고 후다닥 나타나는 게 아니다.
위대한 생각은 느리지만 크고 확실하게 나타난다. 한 번 발현되면 (발현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발현되는 것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중에서 - 52page
이 문장을 읽으며 내 눈에 들어온 단어는 ‘발현’이었다. 발현이라는 단어는 평소 자주 쓰는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힘이 느껴지는 단어다.
사전에서 발현은 속에 있거나 숨어 있던 것이 겉으로 드러남을 의미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어떤 것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 정의를 읽으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발현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생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생각을 만들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빠르게 만들어내려고 한다.
생각도 성과처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라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권의 책이 내 생각을 완성시키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수많은 문장들이 마음속 어딘가에 쌓이고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순간 하나의 생각으로 드러난다.
나는 그 순간이 바로 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책을 읽으며 적어 두었던 메모들을 다시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좋다고 생각하고 밑줄만 그어 두었던 문장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그 문장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서로 다른 점들이 선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하나의 생각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에서야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그것이 바로 발현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래서 발현은 속도가 느리다.
그리고 그래서 더욱 단단하다.
빠르게 만들어낸 생각은 쉽게 흔들린다.
그 생각이 충분히 깊어질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쌓인 생각은 다르다.
그 생각은 이미 내 삶과 여러 경험을 지나온 뒤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 갑자기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태도와 생각들이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힘도 그렇고 용기도 그렇다.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것들이 필요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무엇이든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도 삶도 너무 빨리 결과를 얻으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문장은 오래 머물러야 하고
어떤 생각은 시간을 지나야 드러난다.
책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다.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래 남는 문장이 하나라도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문장 하나가 내 안에 머물러 있다가
언젠가 삶의 어느 순간
생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발현’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발현이란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자라온 시간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