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율은 축적된 시간과 경험이 서로를 만나 폭발하는 순간이다.
봄빛이 확실히 자리 잡은 새벽이다. 어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하늘의 대부분은 이미 밝아졌다.
밤의 흔적은 희미한 그림자처럼 남아 있고 그 위로 옅은 푸른빛이 번지고 있다. 서재의 창 너머의 공기는 아직 차갑지만 이제 겨울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주는 고명환 작가의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를 다시 읽고 있다.
이제 새벽에 한 권의 책에서 같은 문장을 다시 읽는 일은 같은 책을 읽는 일이 아니라 다른 나를 만나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모든 책은 서로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 마치 모든 생명체가 서로를 돕기 위해 존재하듯이 말이다.
세상의 모든 지혜를 알려주는 단 한 권의 인생 책은 없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나도 변한다.
예전에 인생 책처럼 느껴졌던 책들이 시시해질 수도 있고 전혀 감동이 었던 책이 몸에 사무치는 전율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중에서 - 76page
전율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은 아니지만 어떤 특별한 순간을 설명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단어를 꺼내 든다.
사전에서 전율은 강한 감동이나 두려움 때문에 몸이 떨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한 기쁨이나 만족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다.
몸으로 먼저 반응하는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전율이 언제 우리를 찾아오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오래 걸어갔을 때일 것이다.
어떤 일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쏟고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마주했을 때 사람은 그 순간을 전율이라고 부른다.
전율은 예상했던 결과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예상보다 더 깊은 순간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전율에는 늘 놀라움이 함께 있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의미를 발견했을 때 사람은 잠시 말을 잃는다.
그리고 그때 몸이 먼저 반응한다.
저자가 말한 독서를 통해 얻는 전율을 나는 다른 순간에 경험한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해도 결국 나쁜 의도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을 위로하듯 이렇게 말해주었다.
“세상에는 본질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없다고 하더라고,
다만 우리의 생각이 그것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만들 뿐이라고.”
그 말을 하고 난 뒤 나는 잠시 멈칫했다.
셰익스피어의 그 문장을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너무 선명하게 떠오르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전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책은 읽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왜 우리는 이런 전율을 자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삶 속에서 문장을 꺼내어 쓸 기회를 만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일과 삶을 살아가는 일을 서로 다른 영역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문장은 삶 속에서 다시 사용될 때 비로소 살아난다.
생각 속에서만 머물던 문장이
어느 날 말이 되고
어느 순간 행동이 될 때
그 문장은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
그래서 전율은 독서의 순간이 아니라
독서가 삶으로 이어지는 순간에 찾아오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읽었던 문장을 삶 속에서 다시 꺼내어 사용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그 문장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말이다.
그리고 생각해본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너무 빠르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를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생각할 틈도 없이 일과 일을 이어가고
대화와 정보와 일상 속에서 계속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 마음속에서 충분히 머물 시간을 갖지 못한다.
책을 빠르게 읽으면 문장이 오래 남지 않는 것처럼
삶을 빠르게 지나가면 경험도 오래 남지 않는다.
전율은 빠른 속도 속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감정이다.
그 감정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장이 마음속에서 머물고
어떤 생각이 천천히 자라고
어떤 경험이 삶 속에서 연결되는 시간.
그 시간이 지나야
어느 순간 생각과 경험이 하나로 이어지며
사람은 전율을 느끼게 된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생각을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삶 속에서 경험을 다시 바라볼 때
어느 순간 우리는
아주 조용한 전율을 만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전율’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전율은 축적된 시간과 경험이 서로를 만나 폭발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