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진리는 내가 한 걸음 내딛지 않았을 뿐 이미 가까이에 있다.

by 마부자

봄을 재촉하는 비가 새벽을 깨운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둠은 이미 많이 걷혔지만 하늘은 밝기보다 젖어 있는 느낌이 더 강하다. 비가 내리는 아침은 세상을 느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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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리는 새벽 빗 소리를 배경 삼아 차 한 잔을 준비해 책상 앞에 앉는다.


고명환 작가의 묘한 매력은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단어들을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마음에 들어온 문장은 이것이었다.

“사실 인생의 진리는 매우 단순하다. 심지어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어떻게 해야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식당이 잘되는지,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문제는 그 단순한 진리가 너무 단순해서 매번 까먹거나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중에서 - 79page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진리’라는 단어를 오래 붙잡게 되었다.


진리라는 의미가 사전에서 말하듯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참된 이치라고 본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나에게 더 좋은지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다.


며칠 전 뉴스에서 한 여론조사를 보게 되었다.

암은 예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응답자 네 명 중 세 명은 예방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동시에 암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생각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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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다.

진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진리를 알면서도 그 길을 가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이것이 성공이라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마치 자신이 말하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우리에게 쏟아낸다. 그 수많은 말들 속에서 우리는 점점 헷갈리기 시작한다.


무엇이 진짜인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그래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단순한 진리를 밀어낸다. 대신 더 그럴듯해 보이는 말들을 따라간다.


어쩌면 우리는 진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 속에서 진리를 구별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는 습관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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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늘 단순하다.

건강해지고 싶다면 몸을 움직이면 된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의 습관을 바꾸면 된다.

관계를 지키고 싶다면 진심을 다하면 된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더 복잡한 방법을 찾는다.

더 빠른 길을 찾고

더 쉬운 답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미 알고 있던 진리를 스스로 밀어낸다.


몸이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조금씩 움직이는 것.


그 단순한 것들이 사실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는 사실을 그전에도 알고 있었다.

다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리 많은 진리를 알고 있어도

그것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진리는 여전히 나와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진리는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단순한 진리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시작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떠올리는 일일 것이다.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중에서 단 하나라도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해보는 것이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길 또한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우리는 그 길을 한 번에 완벽하게 가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작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많이 아는 것보다 하나를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며 조금 느리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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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복이 쌓일 때

우리는 어느 순간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그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얼마나 살아내고 있는지가 다를 뿐이다.


봄을 재촉하는 빗소리가 여전히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차가 식어가는 책상 앞에서 나는


‘진리’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진리는 내가 한 걸음 내딛지 않았을 뿐 이미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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