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는 지는 순간이 아니라 돌아서는 순간에 찾아온다.
봄비가 그친 다음 날의 새벽은 공기를 깨끗하게 씻어낸 덕분인지 창밖의 풍경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어둠은 이미 물러났고 빛이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젖은 도로 위로 번지는 희미한 반사빛이 이 시간의 고요를 더 깊게 만든다.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는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있다.
내 뇌한테 패배하지 않으면 세상에서도 패배하지 않고, 돈을 버는 일에서도 패배하지 않는다.
우리는 질 수 있다. 하지만 졌더라도 다시 돌아와야 한다. 빨리 돌아올수록 더 빨리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중에서 - 179page
이 문장은 단순한 위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패배의 의미를 완전히 뒤집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사전에서 말하는 패배의 의미는 경쟁이나 시도에서 이기지 못하거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나는 오랫동안 이 정의를 의심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시도했고 그것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곧 패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패배라는 단어에는
늘 끝이라는 느낌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고명환 작가는 이 단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패’는 단순히 지는 것이고 ‘배’는 등을 돌려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패배는 사실 ‘패’에 가까운 것이었고, 진짜 패배는 그 이후의 선택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지게 된다.
시도했던 일이 기대한 결과를 주지 않을 때도 있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쉽게 스스로에게
패배라는 단어를 붙인다.
하지만 그 상태는 단지 ‘패’일 뿐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상태에서 멈추고 돌아설 때 비로소 그것이 ‘패배’가 된다.
나는 이 차이를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마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결과 중심의 사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시험의 점수로 사람을 평가했고, 사회에서는 성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했다.
잘하면 인정받고,
그렇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났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는 것’과 ‘끝나는 것’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 번의 실패가 곧 능력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가 다시 도전할 이유를 지워버리는 구조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패’와 ‘패배’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는 순간 이미 끝난 것처럼 느끼도록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끝나는 구조가 아니다.
하나의 결과가 다음 선택을 결정할 뿐이고, 그 선택이 다시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흐름 속에서 ‘패’는 자연스럽게 반복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투병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몸이 아프다는 것은 분명 내가 원했던 상태가 아니다.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하나의 ‘패’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것이 패배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이후의 방향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질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질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서지 않을 수는 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방향을 잡고 한 걸음을 내딛을 수는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돌아오지 않는 선택을 하지 않는 삶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패배를 두려워하기보다 ‘배’를 선택하지 않는 연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 늦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이 결국 가장 빠르게 원하는 곳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패배란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며 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지만 돌아서는 것은 선택이다.
나는 ‘패배’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패배는 지는 순간이 아니라 돌아서는 순간에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