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5.식목일, 벚나무와 개나리가 가르쳐준 봄의 방식

by 마부자

아내는 볼링 시합을 가고, 딸은 부산으로 야구 직관을 갔다.

막내는 학교 과제로 스터디카페로 그리고 나는 오전에 독서를 마친 뒤 연꽃습지로 향했다.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따뜻한 햇살 속에 나를 잠시 맡겨두기 위해서였다.


다음 주에는 비와 흐린 날이 이어진다고 하니, 그 전에 봄의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두고 싶었다.

KakaoTalk_20260405_174931396.jpg?type=w1

산책로를 천천히 걷다가 유독 오래 시선이 머문 것은 벚나무와 개나리였다.


해마다 봄이면 아무렇지 않게 보아오던 풍경인데, 올해는 이상하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겨우내 메마르고 무심해 보이던 가지들에서 어느 날 갑자기 꽃이 먼저 터져 나온다.


나는 막연히 연두빛 잎이 자리를 잡고 그 위에 꽃이 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순서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벚나무와 개나리, 목련등은 잎이 먼저 나온 뒤에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감추지 못한 맨가지 끝에서 먼저 꽃을 피워내는 방식이다.

manfredrichter-forsythia-4816171.jpg?type=w1

어쩌면 가장 눈부신 시작은 늘 조금 미완의 자리에서 먼저 오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무들 처럼 꽃을 먼저 피우는 이유는 잎보다 꽃을 먼저 내보내야 꽃이 가려지지 않아 곤충이나 바람에 더 잘 드러나고, 수분에도 더 유리하다고 한다.


또 이른 봄은 다른 잎들이 무성해지기 전이라 햇빛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짧은 시간이기도 해서, 그때 먼저 꽃을 피우는 것은 가장 빠르게 자신의 계절을 시작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나는 잎이 먼저 나고 꽃이 따라오는 흐름을 더 자연스럽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올 해 다른 방식으로 꽃을 피우는 나무들의 순서를 보고 있으면 삶에도 내가 미처 몰랐던 다른 방식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다 준비한 뒤에만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단단해진 뒤에만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ben_kerckx-cherry-blossom-7094565.jpg?type=w1

때로는 아직 비어 있는 자리에서, 아직 다 갖추지 못한 순간에 먼저 피어야 하는 시간도 있다는 것.


53년을 살면서 늘 보아온 벚꽃과 개나리인데,

왜 올해는 그 모습이 이렇게 또렷하게

마음에 들어오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단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책을 읽고 문장들을 오래 들여다보며 내 감정의 결이 조금 달라졌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예전 같으면 그저 예쁘다고 지나쳤을 풍경 앞에서

이제는 조금 더 오래 멈추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내가 자연스럽다고 믿어왔던 것은 자연의 방식이라기보다, 오랫동안 내 안에 굳어 있던 하나의 선입견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늘 어떤 순서와 모양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왔지만, 자연은 애초에 한 가지 방식으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나무는 잎을 먼저 내고, 어떤 나무는 꽃을 먼저 피운다.

denisdoukhan-flight-1179587.jpg?type=w1

중요한 것은 정해진 순서를 따르는 일이 아니라,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자기 계절을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자연스러움이란 고정된 어떤 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고 가장 온전히 피워낼 수 있는 최선의 방식에 더 가까운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6년 초봄의 자연스러움은 내게 바로 그 사실을 조용히 가르쳐주고 있었다.







ChatGPT_Image_2026%EB%85%84_2%EC%9B%94_3%EC%9D%BC_%EC%98%A4%ED%9B%84_09_05_55.png?type=w1

오늘도 감사합니다.^^


한주를 잘 마무리함에 감사합니다.

응원하는 야구팀이 이번주 한번도 지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을 기회가 두번이나 주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0403.늘 걷던 곳이 이제 읽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