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지없이 공사 소음이 들려왔다.
오늘은 뭐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자연스럽게 책을 챙겼고, 마치 정해진 일정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집을 나섰다.
어제는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면, 오늘은 조금 더 멀리 갔다.
작년에 자주 가던 연꽃 습지의 한 벤치.
그곳은 공원보다 훨씬 한적했다.
사람의 말소리 대신 까치 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습지에서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낮에 벤치에 앉아 듣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내게는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배경음이 없었다.
도시 속 서재는 굉음과 크락션 소리로 존재를 주장하는데, 자연은 이렇게 작은 합창으로도 충분히 자기를 드러낸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벤치에 앉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다
이 책은 천천히 시간나는 대로 펼쳐 보고 있는 중이다.
읽을수록 믿기지 않는 것은 이 책이 1947년에 쓰였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가 통과해온 코로나의 시간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낯선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겪었던 어느 날의 공기처럼 느껴졌다.
소설을 읽는데 기억이 따라붙는 색다른 경험.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도 부드러운 봄날에
온몸이 서늘해지는 문장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아이러니했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독서를 마친 뒤에는 작년에 자주 걷던 길을 다시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8킬로미터, 만보를 채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실내자전거라는 편안함을 버리지 못해 나는 자꾸만 밖으로 나가는 일을 미루고 있었다.
집 안에서도 운동할 수 있고, 서재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으니 굳이 밖으로 나갈 이유를 스스로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나를 결국 밖으로 내보낸 것은 봄도 아니었고, 결심도 아니었다.
소음이라는 불편이었다.
나를 밀어낸 것은 분명 불편이었는데, 막상 내가 도착한 곳에서는 내가 평소 편안하다고 믿고 있던 서재보다 더 깊은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차 소리와 익숙한 실내의 공기 속에서 지내며
나는 그곳이 가장 안정된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익숙함을 편안함으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날이 풀리면 나가야지,
아래층 강아지의 하울링을 탓하지 말고
도서관이라도 가서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오래전부터 머물러 있었다.
다만 그 마음이 움직일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오늘의 일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연히 시작된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이미 오래 품고 있던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이 오늘의 발걸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결국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발견하게 해주었다.
불편함 덕분에 더 편안한 자리를 알게 되었고,
우연처럼 찾아온 하루 속에서 오히려 필연에 가까운 깨달음을 얻었다.
삶은 종종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때로는 그렇게 비켜온 길 끝에서 더 잘 맞는 자리를 보여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