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운명은 심성이 시간 속에서 바깥의 모습으로 드러난 이름이 아닐까
강한 봄비가 내린 뒤 새벽은 반짝 찾아온 꽃샘추위로 인해 서재의 온도를 돌려놓았다.
서늘해진 서재의 온도를 따뜻한 차 한잔으로 데우고 인간의 차가운 내면을 돌아보기 위해 펼친 데미안에서 짧고 강한 한 문장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오늘 내가 생각해보고 싶은 단어는 심성이었다.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에 붙여진 두 개의 이름이다.”
데미안 중에서 - 112page
심성이라는 말은 오래된 단어처럼 들린다.
요즘은 성격이나 기질이라는 말은 자주 써도 심성이라는 단어는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심성은 성격보다 더 깊은 곳을 가리킨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보다,
결국 어떤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지를
설명하는 의미, 즉 오래 살아도 쉽게 감출 수 없는 마음의 결 같은 것말이다.
이 문장을 보았을 때, 처음엔 그것이 너무 단정적인 말처럼 느껴졌다.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고
심성은 길러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운명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결국 우리의 심성이 끌고 가는 방향과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사건과 상처를 만나도
누구는 끝내 무너지고
누구는 그 안에서 버틴다.
그 차이를 단순히 운이 좋고 나쁨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견디며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지는
그 사람의 심성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심성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일까.
아니면 살아가며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일까.
나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한다.
분명 사람마다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결이 있다.
누군가는 쉽게 마음을 열고 누군가는 오래 경계한다.
하지만 그 처음의 결이 전부는 아니다.
심성은 살아가며 닳고 다듬어지고 때로는 상처를 입으며 바뀐다.
좋은 사람을 만나며 넓어지기도 하고, 아픈 시간을 지나며 깊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심성은 타고난 성질이면서 동시에 살아낸 시간의 결과이기도 하다.
심성이 곧 운명과 닿아 있다면,
우리는 완전히 정해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결을 어떻게 지켜내고
어떻게 길러내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 또한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가끔은 삶이 너무 버거워 심성 같은 말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어질 때가 있다. 당장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마음을 곱게 지키는 일은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사람은 자기 심성을 잃지 않는 일이 중요해진다.
삶이 힘들수록 사람은 자기 안의 가장 약한 부분과 가장 거친 부분을 함께 드러내기 때문이다.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내 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어두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억울함도 있었고 분노도 있었고 세상을 향해 마음이 닫히는 순간도 있었다.
그 감정들 자체가 잘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감정 속에 오래 머물며 나 자신까지 바꾸어버리지 않는 일일 것이다.
결국 인간은 수많은 감정을 지나도
자기 심성의 방향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지켜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데미안의 문장을 읽고 있자니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처럼 다가왔다.
살아갈수록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이루는 것보다 어떤 마음을 잃지 않을 것인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갖느냐보다 어떤 결을 지닌 채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나는 아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거창한 미래부터 붙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말에 자주 흔들리는지.
어떤 태도를 반복하고 있는지.
무엇 앞에서 쉽게 거칠어지고
무엇 앞에서 끝내 부드러움을 남겨두는지.
그 작은 움직임들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이 다시 내 삶을 데리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심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 운명은 심성이 시간 속에서 바깥의 모습으로 드러난 이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