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은 내가 부정하고 싶지만 결국 책임져야 하는 내면의 모순이다.
봄비가 지나간 뒤의 새벽 풍경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한 번 씻긴 것처럼 선명해 보인다.
젖은 바닥도, 떨어진 꽃잎도, 나뭇가지의 빈자리도 전보다 더 또렷하다.
요즘 나는 이런 새벽이 좋다.
모든 것이 조금은 가라앉아 있고,
낮에는 쉽게 지나쳤을 생각들이
조용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바로
우리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데미안 중에서 - 149page
봄이 다가온 새벽,
이 문장의 의미는 내게 이렇게 다가왔다.
결국 나를 흔드는 것은 바깥의 타인이라기보다
그 타인을 통해 들여다보게 되는
내 안의 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
결함이라는 말은 어딘가 불편하다.
좋아하는 단어라고 말하기 어렵고,
오래 바라보고 싶은 단어도 아니다.
그 단어가 가리키는 것이
결국 내 안의 감추고 싶은 약점,
인정하고 싶지 않은 흠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결함을 고치기 전에 먼저 덮으려 한다.
없는 척하고, 괜찮은 척하고,
적어도 내 눈에만큼은 덜 보이게 만들려 한다.
하지만 내가 감추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타인을 향한 불편함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누군가는 허세 부리는 사람을 참지 못하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계산적인 사람 앞에서 쉽게 마음이 상한다.
나는 저런 사람이 싫다.
저 태도는 보기 불편하다.
왜 저렇게까지 행동할까.
내가 이토록 자극받고 불편해하는 것은
타인의 결함 자체가 아니라,
그 결함 속에서 뜻하지 않게 마주하게 되는
내 안의 닮은 점일지도 모른다.
결국 타인이 내게 주는 자극은
그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내면의 문제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남의 흠을 보며 쉽게 분노하지만,
그 흠의 모양이 내 안에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는 그 분노를 예전처럼 단순하게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자기 결함을 알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할까.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자주 비교하고
얼마나 은근히 스스로를 중심에 두는지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르고,
인정하는 것과 바꾸는 것은 또 전혀 다른 일이다.
결함은 내가 모르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건드리기 싫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순간 내가 생각했던
나보다 덜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함을 고치기보다 설명하는 쪽을 택한다.
원래 성격이 이래서 그렇다고 말하고,
상황이 어려워서 그랬다고 말하고,
상대가 먼저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설명은 가능하지만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함을 꺼내지 못한 채 한편에 숨겨둔다.
왜냐하면 결함을 발견해 꺼내는 일이 곧 오래된 나를 수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함을 발견하는 일이
꼭 나를 수정하거나 혐오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함이 있다고 해서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결함을 남 탓으로만 밀어두거나 평생 모른 척할 수는 없다는 뜻에 가깝다.
내 안에 이기심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것이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미움이라는 감정이 때로 유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움 그 자체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이 내 안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불편한지,
왜 유독 이 모습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지,
왜 남들은 그냥 지나칠 일을 나는 오래 붙들고 있는지 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질문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대개 상대의 얼굴이 아니라 나 자신의 미완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안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신호다.
내가 외면해온 결함이 여전히 내 감정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붙잡고 있다는 신호 말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미워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그 미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성장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흠을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흠이 내 안에서 왜 이토록 크게 울리는지를 묻는 일.
그리고 바라본 뒤에는
그 결함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조금씩 다른 태도를 선택하는 일일 것이다.
나는 ‘결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결함은 내가 부정하고 싶지만 결국 책임져야 하는 내면의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