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란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과장을 덜어낼 수 있는 내면의 힘
지난 주 내린 비는 공기 속의 차가움을 모두 씻어내고 이제 봄향기가 가득한 새벽 바람을 서재의 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제 정말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새벽.
봄은 왠지 떠들썩함이 느껴지는 혼란보다는 조용함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래서 이번 주 봄날 같은 새벽을 함께 할 책은 <조용히 이기는 사람들>로 선택을 했다.
“오해하지 마라.
절제된 표현은
부족한 자의식과는 다르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자의식이 충만하고 훌륭한 사람만이 과소 표현을 할 수 있다.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동을 절제하지 못한다.”
조용히 이기는 사람들 중에서 - 76page
절제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내게 조금 억울한 단어였다.
늘 참고 누르고 감추는 쪽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일.
분노를 접어두고 웃는 일.
나는 오랫동안 절제를 그런 방식으로 배웠다.
그러니 절제는 자연스럽게 답답한 이미지와 연결되었다.
절제된 표현은 부족한 자의식과 다르다.
오히려 자의식이 충만하고 훌륭한 사람만이
과소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이 문장은
절제를 소극적인 방어가 아니라 단단한 자기 신뢰의 결과로 설명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것 같다.
자신이 불안한 사람일수록 더 크게 말하고 더 많이 설명하고 더 빠르게 반응한다.
사실 알아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확고한 사람은 오히려 말을 줄인다.
자기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자기 성과를 부풀리지 않고 상대를 압도하려 들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이미 자기 안에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절제는 결핍의 태도가 아니라 충분함의 태도일 수 있다. 비어 있어서 조용한 것이 아니라 채워져 있어서 고요한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절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절제는 무언가를 덜 하는 기술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아는 감각에 가깝다.
모든 말에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모든 감정을 다 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모든 자리에서 나를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것은 체념과 다르다.
오히려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선택이다.
내 감정을 누가 대신 조절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절제가 가능해진다.
가만히 돌아보면 내 삶의 많은 순간은 절제보다 반응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오래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고 억울한 상황 앞에서는 곧바로 해명하고 싶었다.
나를 오해할까 봐 미리 설명을 덧붙이고
내 진심을 몰라줄까 봐 말을 더 보태던 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다 말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말이 많아질수록 내 불안이 함께 드러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사람 사이의 관계도 비슷하다.
자신을 신뢰하지 못할수록 상대를 더 통제하고 싶어진다.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해 확인을 요구하고 애정을 증명하라고 말하게 된다.
반대로 자기 안이 안정된 사람은 조금 물러설 수 있다.
바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의 침묵을 견딜 수 있다.
절제는 관계 안에서도 결국 자기 신뢰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타인의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붙잡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절제는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생기는 품성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을 지나도 끝내 자기 감정의 고삐를 쥐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큰 목소리와 빠른 판단으로 자신의 불안을 감춘다.
그러니 절제는 연륜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의 문제일 수 있다.
내가 무엇에 흔들리는지 아는 그런 작은 관찰이 쌓일 때 사람은 조금씩 덜 흥분하고 덜 과장하고 덜 증명하려 하게 된다.
예전의 나는 절제를 삶을 답답하게 만드는 규칙처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절제를 삶을 정돈하는 힘으로 본다.
감정을 즉시 터뜨리는 것이 솔직함이 아니라 감정의 결을 끝까지 들여다본 뒤 말할 수 있는 것이 더 깊은 솔직함일 수 있다.
나는 ‘절제’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절제란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과장을 덜어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