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이란 나를 지키기 위해 남겨두어야 할 에너지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게
서재의 창 너머의 하늘은 이제 완전히 깨어 있었고
봄은 여름의 직전의 얼굴로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요즘 이시간의 또다른 좋은 점은
하루의 시작을 너무 일찍 서두르지 않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창 밖의 해는 한낮의 분위기를 품고 있지만
전화도 메시지도 누군가의 기대도 아직 본격적으로 도착하지 않는다.
그렇게 조용한 시간에 문장을 다시 읽다 보면
어떤 단어는 문장 전체보다 오래 남는다.
“한발 뒤로 물러나 있으면
매우 유용하다.
원하는 만큼 발전하거나
노력할 수 있다.
비축되어 있는 에너지를 아껴둠으로써 능력과 열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독자적인 개성과 능력을 갖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면 안된다.
에너지를 비축해 두지 않으면
개성도 있을 수 없다.”
조용히 이기는 사람들 중에서 - 93page
소진이라는 말은 대개 너무 늦게 발견된다.
다 타버린 뒤에야 알아차리기 쉽기 때문이다.
몸이 먼저 알려주기도 하고
마음이 먼저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흔한 경우는 겉으로는 멀쩡한데 안쪽에서 서서히 비어가는 일이다.
해야 할 일은 계속 해내고 사람도 만나고 대화도 한다. 하루를 큰 문제 없이 통과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쁨이 줄어들고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하던 일들이 버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소진의 초기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오늘 문장에서 유독 나의 시선을 멈추게 만든 문장은 에너지를 비축해 두지 않으면 개성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 문장은 소진을 단지 피곤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로 설명하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흔히 지치면 쉬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휴식의 권유가 아니다.
자신만의 능력과 개성을 지키고 싶다면 에너지를 무한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에 가깝다.
소진은 일을 많이 해서 생기는 현상만은 아니다.
멈추지 못해서 생기고 계속 반응하느라 생기고
쉴 자격을 얻어야만 쉴 수 있다고 믿을 때 더 깊어진다.
그래서 소진은 몸보다 마음에서 먼저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내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순간은 대개 분명하다.
꼭 답하지 않아도 되는 말에 오래 마음을 쓰고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자꾸 평가할 때 그렇다.
소진은 과로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소모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삶에서는 꽤 크다.
사람은 일 때문에만 지치는 것이 아니다.
문제에 대한 해석과 타인의 시선 때문에 지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마음 때문에 더 빨리 닳아간다.
나는 퇴사를 하고 나서야 에너지라는 것이
시간과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하루에 시간이 있다고 해서 마음에도 같은 분량의 여유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많아졌을 때 더 쉽게 흩어질 수도 있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쓰고 싶었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도 어떤 날은 이상하게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나를 다그치곤 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이 생겼는데 왜 더 잘하지 못하냐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기의 나는 멈춰 있던 것이 아니라 회복 중이었다.
어쩌면 소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의지보다 관찰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살아나는지.
무엇을 할 때 급격히 비어가는지.
누구를 만나고 나면 편안한지.
어떤 대화 뒤에는 이상하게 오래 지치는지.
내 안의 에너지가 채워지는 방식과
빠져나가는 방식을 모르면 사람은 계속 자신을 잘못 다루게 된다.
차는 연료가 떨어지면 멈춘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연료가 떨어져도 한동안 더 움직인다.
문제는 바로 그 점이다.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닌데 우리는 그 가능성을 건강의 증거로 착각한다.
그렇게 계속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라는 차는 멈춰버린다.
소진된 사람은 관계 안에서 다정함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참을 수 있는 폭이 줄어들고 작은 말에도 쉽게 예민해진다.
이해보다 방어가 먼저 나온다.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조차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에너지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잠시 들어주고 상대의 실수를
내 상처와 연결하지 않는 그런 작은 여백들이 관계를 지탱한다.
그래서 소진은 함께 사는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바닥나 있을 때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발 뒤로 물러나는 일은 그래서
비겁함이 아니라 기술이다.
물러남은 포기가 아니다.
내가 지금 어디까지 나가야 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아는 감각이다.
세상이 자꾸 속도를 요구할수록 더 필요한 것은
속도를 내는 힘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소진을 막는 것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다.
내 안의 에너지가 줄어드는 소리를 너무 늦게 듣지 않는 것이다.
소진은 다 써버린 상태를 뜻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삶은 늘 바쁘게 흘러가지만
에너지는 언제나 유한하다.
그러니 남겨두는 일은 소극적 선택이 아니다.
내가 계속 나로 남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결심이다.
나는 ‘소진’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소진이란 나를 지키기 위해 남겨두어야 할 에너지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게 하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