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기척은 거의 걷히고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들이 하나둘 들려왔다.
창밖의 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위, 아래층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누군가의 바쁜 발걸음이 고요를 대신하고 있었다.
완전히 조용하지 않아서 오히려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생각이 또렷해지는 아침이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생각이 아니라 반성이었다.
살면서 아주 많은 순간에 나 자신을 설득해왔다.
그 설득은 성찰의 언어처럼 보였지만
돌아보면 종종 방어의 언어였다.
하기 어려웠다고 말하는 대신
상황이 그랬다고 말했고,
실수였다고 인정하는 대신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당화는 그렇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사실 정당화라는 단어 자체는 나쁜 뜻이 아니다.
정당하다는 말에는 옳음의 의미가 들어 있다.
정당한 대가.
정당한 권리.
정당한 평가라는 표현 속에서
이 단어는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언어로 쓰인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정당화라고 말할 때는
조금 다른 결이 생긴다.
무언가 떳떳하지 않은 일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느낌이 따라붙는다.
좋은 의미의 단어가 생활 속에서는
종종 핑계의 얼굴을 하고 등장하는 셈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당화는
옳지 않은 것을 억지로
옳아 보이게 만드는 태도에 가깝다.
실수를 덮기 위해 새로운 이유를 덧붙이는 일이다.
우연히 잘된 일을 마치 처음부터 내 능력이었던 것처럼 포장하는 일도 여기에 포함된다.
결과가 나온 뒤에 원인을 다시 만들어내는 행위.
나는 정당화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후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해석을 덧씌우는 것처럼 정당화는 어쩌면 자존심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정당화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는 늘 타인의 시선이 개입한다.
내 행동을 내가 납득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설명을 붙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정당화는 자기기만인 동시에
사회적 연출이기도 하다.
우리는 내면의 양심보다
바깥의 평가를 더 크게 의식할 때가 많다.
잘못했다는 사실보다 무능해 보이는 것이 두렵고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더 아프다.
그럴 때 사람은 반성보다 정당화를 먼저 선택한다.
잘못을 줄이는 것보다
이미지의 손상을 줄이는 쪽이
더 시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정당화에
유난히 익숙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과 중심의 사회에서 오래 살아왔다.
과정보다 성과가 먼저 평가되고
사정보다 결과가 먼저 숫자로 남는다.
이런 환경에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으로 보이기보다
경쟁에서 밀린 사람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임을 지는 법보다
설명을 만드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현실의 예는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으면
공부를 안 한 이유보다 시험이 이상했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직장에서는 일이 잘못되면
판단의 실수보다 보고 체계와 조직 문화가 먼저 언급된다.
정치와 공적 영역에서는 더 선명하다.
잘못된 결정이 드러나도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상대의 탓과 이전 정부의 탓과 구조의 탓이 먼저 등장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더 빠르다.
누군가를 공격한 말이 문제가 되어도
상처를 준 사실보다 원래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해명이 먼저 쏟아진다.
정당화는 그렇게 개인의 습관을 넘어
사회의 화법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당화가 무조건
악의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것은 연약함에서 나온다.
내가 기대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내 선택이 틀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기 두려워서.
그러니 정당화를 줄인다는 것은
단지 더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조금 덜 완벽해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힘과 관계가 있다.
부족함을 인정해도 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감각과 관계가 있다.
결국 정당화의 반대편에는 용기가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 책에서 말하는
나와 마주서는 용기가 아닐까.
오늘 아침 나는 이 단어를 생각하며
한 가지를 오래 붙들었다.
정당화는 나를 지키는 말 같지만
사실은 나를 정확히 보지 못하게 만드는 말일 수 있다는 것.
나는 오늘 정당화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정당화란 옳지 않은 일에 뒤늦은 이유를 붙여 스스로를 속이는 가장 교묘한 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