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야외에서 2박 3일을 보내야 하는 일정을 준비했다.
준비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다. 예전에는 대체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하고 다녔을까.
하나를 정하면 둘이 따라 나왔고,
둘을 해결하면 또 다른 셋이 기다리고 있었다.
괜히 한숨부터 나왔다.
떠나기도 전인데 벌써 한 차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후배가 텐트를 하나 선물로 준다고 했지만
그것도 쉽게 끝날 문제는 아니었다.
그 텐트는 차박용 텐트였고,
차박을 하려면 보통 SUV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차는 승용차였다.
그러니 가장 시급한 문제는 텐트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대체 어디에서 잘 것이냐는 아주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텐트에서 잘지,
차에서 잘지,
아니면 인근 모텔에서 잘지.
나도 아내도 결정을 못 한 채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맴돌았다.
일단 지난주 캠핑페스타에 다녀온 뒤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새 텐트를 사서 가는 일은 하지 말자.
그건 즐거운 여행 준비가 아니라
또 하나의 큰 짐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후배가 준 텐트를 승용차에 연결하고,
바깥에는 기존의 작은 텐트를
하나 더 치는 방법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아내는 좁은 텐트는 싫다고 했다.
결국 이런저런 고민 끝에 SUV를 렌트해보기로 했다.
일단 차를 빌려 차박용 텐트를 제대로 쳐보고
2박 3일을 보내본 뒤에,
앞으로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쏘카라는 것을
딸에게 물어가며 예약했다.
세상은 분명 내가 살아온 쪽보다
아이들이 더 잘 아는 방향으로 자꾸 움직이고 있었다.
차가 해결되고 이번에는
장롱 속 깊이 들어가 있던
침낭과 이불 세트를 다시 꺼내 빨았다.
베란다 창고에 혹시나 몰라 넣어두었던
캠핑용품들도 하나씩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쓰지 않을 줄 알았던 물건들이
다시 햇빛을 보는 모습을 보니,
마치 한동안 연락 없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꺼내보면 늘 없는 것이 더 잘 보인다.
결국 다이소에도 가고 인터넷 주문도 하고,
이번 주는 소소하게 택배기사님과
좀 친해진 날들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10년 전이 떠올랐다.
아내가 처음 캠핑에 푹 빠졌을 때였다.
그 시절 우리 집 현관 앞에는
거의 매일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때의 나는 저걸 왜 이렇게까지 사야 하나 싶었고,
솔직히 말하면 그 재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은 것 하나를 주문해놓고도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고,
얼른 꺼내서 한번 써보고 싶고,
괜히 마음이 먼저 들뜨는 그 기분.
아, 이래서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된다고들 하는구나 싶었다.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고, 어떻게 자게 될지도
아직 완전히 정하지 못했으면서,
이상하게 마음만은 벌써 바깥 공기를 맡고 있었다.
그러니 준비가 피곤하면서도 묘하게 즐거웠다.
번거로운데도 자꾸 손이 가고,
귀찮은데도 슬쩍 설레는 마음.
그 모순이 여행 준비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 종일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저녁에는 아내와 이마트에 가서
2박 3일 먹을 음식 재료를 샀다.
장을 보고 계산을 마친 뒤
카트를 한번 들여다보는데,
문득 예전 캠핑 때의 카트가 떠올랐다.
그때라면 기본적으로
참이슬 한 박스와 카스 한 박스쯤은 실려 있었고,
대부분은 술안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카트는 많이 달랐다.
필요한 재료들과 먹을거리들이 담겨 있었지만,
예전의 술향기 대신 조금 더 단정하고
조용한 생활의 표정이 보였다.
아내와 나는 그 카트를 보며 웃었다.
이젠 우리도 좀 달라졌네, 하는 마음으로.
같은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담아가는 것들이 달라졌다는 건,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시간도
조금은 달라졌다는 뜻일 것이다.
예전에는 더 흥겹고 더 요란한 즐거움을 챙겼다면,
지금은 조금 더 편안하고
무리 없는 시간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나이가 들었다는 말보다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오늘은 단순히 여행을 준비한 하루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조용히 확인한 하루였는지도 모르겠다.
떠나기 전부터 이미 조금 행복했던 날.
나는 오늘 그런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제법 많은 것이 창고에 남아있어 감사했습니다.
도착하는 택배상자를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보며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