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의 하루는 느리고
반복적이었다.

내가 그녀의 속도에 맞춰 걸어가야 한다.

by 마부자

어젯밤, 나는 아내와 함께 일찍 잠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뒤척이는 그녀를 지켜보는 동안, 나 또한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침내 겨우 잠들었지만, 새벽 5시쯤 다시 눈이 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화장실에 다녀온 그녀는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 내게 질문을 이어갔다. 밤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녀의 혼란과 내 마음도 막막했다.


나는 그녀의 상태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오늘은 더 좋아질 거야"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매일 같은 소망을 품으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그 소망이 이뤄지지 않을 때면 스스로가 답답해졌다. 아내를 정상적인 기준으로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기대와 현실 사이에 묶어두고 있었다.


“기준을 낮춰야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녀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어쩌면 너무 큰 변화를 바라며 매일을 재촉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아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내가 조급해한다고 더 빨라질 수 없는 여정이라는 걸, 나는 매 순간 새롭게 깨달아야 했다.


새벽의 어둠 속에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 아내와 나에게 필요한 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을 있는 그대로 함께 견디고 지내는 것이었다. 기대를 품지 않는 대신,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에 더 집중하고자 다짐했다.


“내가 그녀의 속도에 맞춰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아침이 오고, 아내에게 씻자고 권했을 때 돌아온 건 기분 나쁜 표정이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오늘은 다른 방법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끌고 가지 않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우리 언제 집에 가?"라고 물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씻고 준비해두자. 그러면 의사 선생님도 허락하실지 몰라."


그 말은 그녀에게 작은 동기가 된 듯했다. 잠시 갈등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결국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시키는 동안 투정 섞인 불평을 듣기도 했지만, 그런 소소한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오늘의 목표를 이루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씻고 나서 한결 깔끔해진 그녀의 모습에서 작은 승리를 확인했다.


아침 식사가 도착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밥을 잘 먹지 않았다. 몇 숟가락만 뜨고는 더는 못 먹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시 수저를 들어 그녀를 도왔다. "조금만 더 먹어보자," 하며 하나씩 건네니 천천히 조금씩 받아먹었다. 아내가 스스로 먹는 모습이 그리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내가 대신하는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식사 후 커피를 타주며 우리는 잠시 추억의 시간을 가졌다. 예전 캠핑 때의 이야기와 막내의 공연 영상을 보여주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잠깐 웃었고, 나는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그러나 그 웃음은 기억 속에 오래 남지 못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다시 흐릿해지는 그녀의 기억은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 같았다.


오늘도 그녀와 나의 하루는 느리고 반복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반복 속에서도 중요한 건, 우리는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기억이 짧게 유지될지라도, 그 순간의 미소가 오늘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기억이 짧아도, 그 순간의 감정은 그녀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으며 또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 8시 30분, 과장님이 회진을 오셨다. 아내에게 이름, 병원 이름, 계절 등 다양한 질문을 하셨고, 그녀는 모두 정확히 대답했다. 어제와 비교해도 확실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준 아내를 보며 나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신중하게 내일까지 상태를 더 지켜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녀의 회복이 순조롭다는 건 분명했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의미였다.


그 순간, 아내가 직접 입을 열어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언제 집에 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 질문 하나로 그녀가 스스로도 나아지고 싶어 한다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 의지는 나에게도 큰 힘이 되었다.


티브이에 대해 우려를 전달하자, 의사 선생님은 의외의 답을 주셨다. "머리에 자극을 주는 건 오히려 좋습니다. 계속 보게 하셔도 괜찮아요." 그 말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나는 티브이나 영상이 그녀에게 혼란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의사 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중요한 건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도록 시간을 조절하며 자극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나는 아내의 작은 변화와 의지 속에서 우리의 방향을 다시금 가다듬었다. 그녀는 여전히 질문을 반복하고 기억의 조각을 놓치지만, 그 안에서도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임을 다시 확인하며 나는 아침을 열었다. 티브이와 대화를 병행하며, 그녀의 마음과 머리를 함께 자극할 방법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하루하루 쌓아가는 이 작은 진전들이 언젠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는 길이 될 것이다.


오전, 뇌혈관 촬영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는 길. 아내는 검사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를 부축하며 병실까지 조심스럽게 걸었다. 피곤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오늘 하루가 길고 버거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볼링클럽 누님이 병문안을 오셨다. 과일과 함께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며 아내와 대화를 나누셨다. 그러나 아내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고, 누님은 그것을 눈치챘다. 긴 말 대신 짧은 방문으로 자리를 떠난 그녀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 짧은 시간이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오후, 문득 아내에게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저 짧은 산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건넨 말이었다. 뜻밖에도 아내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병원 구내식당에 도착했지만, 떡볶이는 품절이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대신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내는 쫄볶이를 골랐고, 작은 테이블에 앉아 맛있게 먹었다. 쫄볶이를 한 입씩 먹으며 "어묵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오늘은 그냥 이렇게 만족하자고 달랬다. 설득 끝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나는 작지만 중요한 목표를 이룬 기분이 들었다.


떡볶이 한 그릇이 만들어낸 이 소소한 외출은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짧은 숨 돌림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사소한 일상이 우리의 회복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오늘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내일도 이런 작고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딸에게서 감기에 걸렸다는 연락이 왔다. 병원에 오지 말고 푹 쉬라는 내 말에 딸은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요 며칠 엄마를 돌보느라 힘들었을 텐데, 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아이 앞에서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다짐이 부족한 순간들로 흔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저녁 시간, 아내의 직장 동료에게서 아내의 발령지가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아내에게 전하자, 그녀는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그게 어디야?”, “거긴 뭐 하는 곳이야?” 그녀의 혼란스러운 질문 속에서 나는 실수로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걸 깨 달았다. 순간 후회가 스쳤지만, 이내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 떠올랐다.

“잘못된 사실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아내의 기억 회복을 돕기 위해 귀찮더라도, 같은 말을 반복하더라도 제대로 설명해야 했다. 그녀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며, 나 또한 조금 더 단단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기억의 퍼즐을 천천히 맞추는 동안, 나는 반복과 인내로 그녀를 도울 것이다.


밤 9시, 아내는 온몸이 아프다며 뒤척였다. 나는 파스를 붙이고, 그녀의 어깨와 팔다리를 조심스럽게 주물러주며 그녀를 달랬다. 그녀가 겨우 잠들었을 때, 나도 잠시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는 그녀의 작은 변화 속에서, 또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며 지나갔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되기를.” 그렇게 기도하며 나는 침대 곁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녀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는 밤, 그 소리가 내게는 회복의 작은 신호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