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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aron Dec 30. 2015

얼룩

Macaron 감성살롱


여느 날처럼 언제나 그랬듯 밥을 떠먹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김치 국물이 가슴팍에 튀었다.

한 방울 밖에 튀지 않은 국물 자국을 없애려고 옷을 벗어 세면대에서 국물이 튄 부분을 비벼 빠는데

그 작은 자국 하나를 지우기 위해 자국의 몇 배가 되는 면적이 물과 비누거품으로 흠뻑 적셔졌다.

너무 작고 사소히 보여서 옷 전체를 대야에 푹 담궈 빨기에는 유난스럽고

(그리고 전체를 눌러 빤다고 그 작은 자국이 빨리는 것도 아니더라),

그리고 부분을 빨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휘말리는 작은 국물자국.

상처는 순식간에 허를 찌르지만 이를 회복하기 위해 상처를 마주하는 과정은

막막한 초원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모퉁이돌을 향해 초원 언저리부터 느리게 에둘러 걷는 것과 같다.

내 삶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크진 않으나 그렇다고 내 삶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은 건 아닌 모호한 크기로

작은 상처는 내 삶의 경계를 아슬아슬 오가며 툭툭 자갈돌을 찼다.

비벼 빤 곳에 이제 상처는 없지만 얻어맞은 멍 같은 물자국이 옷에 그려졌다.

시간과 햇빛이 그 흔적을 점점 옅게 해주겠지만

완전히 마르기 전까지는 상처 없는 멍자욱은 축축하고 서늘한 무거움으로 내 피부 위를 쓸어내릴 것이고

난 이미 지워져 존재하지 않는 상처를 촉감으로 기억하겠지.

아파하기도 아파하지 않기도 애매한,

그리고 상처라고 부르기엔 가볍고 추억이라 하기엔 서늘한

그 기억의 편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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