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aron 감성살롱
어젯밤 집 들어오는 길에 갑자기 헤게모니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집 도착하자마자 찾아봤는데 신기하게도 지금 내 고민에 작은 길을 제시해주는 것 같아 잊지 않기 위해 여기 기록해둔다.
지배계층의 통치 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힘으로 찍어 누르거나 정신을 지배하거나. 헤게모니는 후자와 관련된 개념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지배계층이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상식이고 당연한 것이라며 피지배계층에게 주입하는 일종의 사고 시스템을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굳이 총과 칼을 들이밀지 않아도 피지배계층이 자생적으로 힘의 논리의 정당성을 구축하여 지배층의 좋은 무기가 되어주는 헤게모니는 비단 국가를 안정되게 운영하는 큰 목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개인 간의 인간관계에서도 종속관계를 수립하고자 힘의 논리가 적용될 때 헤게모니는 발견된다.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에 근거하여 상대방을 후려치기 하기 시작한다. 제일 흔한 예가 지적하기. 누가 봐도 예쁘고 멋진 사람에게 왜 이렇게 늙어 보이게 입냐, 넌 이런 옷 안 어울린다, 웃는 게 병신 같으니 그렇게 웃지 마라 등등. 인간관계를 수평적으로 인식하면 군림할 필요성도 없는데 상대방을 내가 꺾고 올라가야 하는 대상으로 인지하는 순간 인간관계는 지배와 종속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피곤한 게임이 된다. 군림하고자 하는 자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관적 논리에 바탕을 두어 상대방이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 위축되는 헤게모니를 주입함으로 스스로 종속자의 위치에 서게 만든다.
보편적 상식적이란 옷을 입었을 뿐 국가의 헤게모니 역시 특정 색을 띠고 있는 일종의 사고체계인 만큼, 국가라는 큰 조직조차 국가의 시점에서 일개 구성원일 뿐인 국민의 뜻과 반하여 종종 충돌을 유발하는데, 하물며 개인 간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헤게모니가 다수를 아우르기 위한 국가의 그것보다 보편타당할 리도, 지배에 서고자 하는 쪽과 종속시키려는 쪽 사이에서 갈등이 없을 리가 없다.
사람은 다양하고 절대적으로 옳지도 옳지 않은 것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의 바람직한 모습은 다양한 모습이 살아있는 수평 관계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신이 옳은 쪽에 서기 위해 상대방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고 그를 깎아내림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 못된 짓거리를 한다. 즉 자신이 존립하기 위해 상대방을 내 아래에 두는 파워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는 전제 하에 정립된 헤게모니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헤게모니를 강요당하는 쪽은 정말 내가 잘못됐나 수없이 고민하고 상처받고 때로는 부딪혀 싸우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 쌓아온 시간과 종종 나에게 상대방이 주었을 진심 등의 경험은 상대방이 나에게 주입하는 헤게모니의 객관성을 판단하는 이성의 논점을 흐리고 주관적 헤게모니에 신뢰를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제삼자 입장에선 왜 영향을 받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관계 케이스들이 있다. 그건 당사자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주입하는 헤게모니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과 신뢰가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어 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과 신뢰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헤게모니들에 내가 종속되어 나를 좀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과의 좋았던 경험들이 잘못된 헤게모니의 신뢰도를 증명하는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에서 인간관계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존재하는 것이 맞다. 내 생각은 그렇다. 나라는 고유한 존재가 누군가의 정체성을 위해 착취당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