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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가 Jun 10. 2020

웹디자인, 우리는 그간 무엇을 배웠을까?

졸업장이 웹디자인에 미치는 영향

"웹디자인과 나오셨나 봐요?"


얼토당토않은 질문에 말문이 막힙니다. 내가 발을 딛고 사는 한국땅에 그런 학과가 있었나 돌이켜봅니다. 그리해야 저 개떡 같은 질문을 받아칠 수 있습니다. '과연 나는 전공자인가 비전공자인가?' 디자인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원으로 향합니다. 4년 또는 그 이상, 디자인이라는 것에 미친 듯이 몰두했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기업에선,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합니다. 참으로 기가 찹니다. 학자금 대출만으로도 빡빡해 뒤져버리겠는데 또다시 뭔가를 배워야 한답니다. 이쯤 되면 차라리 대학 쌩까고 학원부터 다닐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내가 알고자 하는 기초는 그곳에 더 많습니다.


국가에서 내어주는 자격증까지 있지만 대학교 학과엔 찾아보기 힘든 전문과정.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직업. 네, 바로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웹디자이너라는 직군입니다.


26년 전의 외침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26년 전 서태지라는 가수가 던진 교육 이데올로기는 라면이 담겨있던 양은냄비처럼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결국 대학은 나와야 사람 취급받을 수 있고, 각종 학위 심지어는 외국어까지 능통해야, 어느 기업의 문턱에라도 다다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바뀔 거라 기대했습니다. 노래방에서 '교실이데아'를 미친 듯이 소리치면, 그 소리. 저 위 어딘가에 닿아 학벌이니 경쟁이니 이 딴것들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 그게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런 세상이 와줄 거라 믿었습니다.


2020년. 우리는 또다시 학원의 문을 두드립니다. 대학에서 몇 년간 배운 포토샵을 또다시 복습하듯 들어야 하고, 아무도 알려준 적 없던 UI와 현 실무자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UX이론을 의구심이라는 틀 안에 담아둡니다. 희망이라는 종이 위에 써 내려간 나의 이력서는 기성품처럼 짜인 포트폴리오와 함께 어느 기업에 전해지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봅니다. 현 실무를 지내는 경력자라고 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 걸까?', '직업과 관련한 희망 중 이리도 불투명한 것이 또 있을까?'


모두 무책임하다 생각합니다. 학교도 학원도...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할 것만 같던 기업도... 누구 하나 명확하게 답을 주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못하는듯합니다. 답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어느 학과를 나와야 웹디자이너가 되는 걸까


웹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생긴 지 몇십 년이 지났건만 같은 단어의 이름을 가진 학과는 없습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소개된 직업정보는 이쯤 되면 사기에 가까운 정보라 보입니다. 일자리 전망, 발전 가능성, 고용평등...


'UI/UX 디자이너를 모집합니다', 'UI/UX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애당초 말도 안 되는 말들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기술과 이론의 시발점인 천조국에서도 없는 복합적인 포지션입니다. 참으로 씨발스럽습니다. 기획자라는 포지션 만들어 기획 신경 쓰지 말고 디자인만 하면 된다더니, 어느 날 갑자기 기획까지 가능한 UI/UX 디자이너가 돼라 합니다. 퍼블리싱 때어냈더니 더 거지 같은 게 찾아온 셈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20년 가까운 실무를 지낸 경력자들도 짜증이 납니다. 너무 많은 걸 알아야 일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회상해봅니다.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던 2002년. 영업 뛰던 양반이 사무실로 들어와 건네주던 사이트맵 몇 장. '해외에선 이렇게 한다더라'라는 말 한마디에, 이론이나 어떠한 개념도 없이 짜들어간 그들의 스토리보드.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기획을 하면 안 되는 인간들이 기획자 1세대였던 겁니다. 달리 방도가 있었을까요? 뭐가 맞는 건지 아무도 몰랐던 판이니 말이죠. 그렇게 지속된 기형적인 실무 구조. 세월이 흘러 사무실 어딘가엔 항상 기획자라는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우리는 늘 그들이 전해준 여러 장의 문서를 살피며 시안을 잡았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대학에서 웹디자인을 가르칠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하단 생각이 듭니다. UX를 녹여 UI를 만들어낼 사람이 없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해본 적이 없으니 가르칠 수도 없지요.


개나 소나 웹사이트와 앱을 가진 세상입니다. 그만큼 웹디자이너를 필요로 하는 기업은 늘어났지만 공급에 비해 수요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셋이서 해야 할 일을 한놈이 쳐내고 있고, 그게 당연하다는 의식마저 팽배합니다. UX. 디자인하는 놈뿐 아니라 기획하던 놈들이 배우러 가야 하는 이론입니다. 구인 제목 자체도 'UI/UX 디자이너'가 아닌, 'UX/기획자'가 맞다 생각합니다. 동네 북이 아닌가 싶습니다.


디자인 뭣도 모르는 놈들에게 컨펌받아야 하며, '심플하면서 화려하게'라는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소화해야 합니다. 퍼블리셔나 개발자 눈치를 보며 시안을 잡아야 하고, 그들보다 더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지만 정작 통장에 꽂히는 숫자는 그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도 무언가를 같이 개발하는데 우리는 개발자가 아닌가 봅니다.

어디 가서 뭘 배워야 좀 나아질까요?


도움이 되려 이런저런 잡지식을 써 내려가지만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한 타 한 타 두드릴 때마다, 모니터 너머 나를 비웃을 진짜가 나타날까 조마조마합니다. 저 또한 가짜니까요. 리더와 선배라는 완장을 차고 후배에게 건네는 조언.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감각과 이론. 이른바 먹히는 디자인을 도출해 내어도 클라이언트의 'No!'라는 한마디면 모든 게 쓰레기가 됩니다.


그렇게 시안의 넘버링이 늘어납니다.

main.psd, main18.psd, main28.psd...


오늘 하루도 많은 질문글이 올라옵니다. '학원을 다녀야 할까요?', '포폴 피드백 부탁합니다', '뭘 공부해야 할까요?'등등... 댓글과 글쓰기를 멈춘 선배들이 슬슬 이해가 됩니다. '그냥 해!'라며 무식하게 일 던지던 사람들이 현실적이라 느껴집니다.


늦은 밤. 얼굴 모르는 누군가에게 막연하게 미안해집니다. 내 밥그릇을 고민해도 모자란 판에 지금 써 내려가는 이 글 또한 참 뻘짓이라는 생각입니다. 오만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직원들 피 빨던 사장 새끼에게 '디자이너 더 뽑아야 합니다', '이런 식이라면 웹에이젼시라는 의미를 잃게 됩니다'라는 식의 어필을 좀 더 미친 듯이 해볼 걸... 후회가 됩니다. 지금도 공부를 하며 웹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 말 한마디 전합니다.


"선배로서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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