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최종 메인 시안_28.PSD
대표님의 지시사항으로 신규 프로젝트의 디자인 경쟁이 진행되었습니다. 두 명의 디자이너가 각자 하나씩 시안을 만들어 대표님방으로 입장합니다. 이제 막 시작한 자와 휴일도 없이 몇 년을 달려온 자. 빠르고 정확한 누끼. 얼마 전 심은 임플란트가 빠질 정도의 놀라운 합성 스킬. 둘 모두 열심히 임했습니다. 얼마 후 대표님의 고함과도 같은 종료 벨이 울리고 신입인 자의 패배로 경기를 마감합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패배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하...
종종 겪게 되는 실무 상황입니다. 타이트한 일정. 다양한 시안이 필요할 때 어쩔 수 없이 사무실의 모든 디자이너가 총동원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누군가에게 저울질당하게 되죠. 커다란 회의실. 사무실 모두가 모여 나의 디자인에 이건 어떻고 저건 어쩌고. 솔직히 짜증이 납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디자인 실무자도 아닙니다. 별다른 논리와 이론적인 접근 없이 "이건 좀 그래, 이쪽이 더 나은데?"라고 씨부리죠.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화를 누르며 그런 상상을 합니다.
차마 외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퇴사를 앞두고 있다면 마우스 집어던지며 한 번쯤 실행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용자들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전문성이 좀 더 극대화될 것 같거든요. 자, 개인 바람은 여기서 살짝 접어두고 아래부터는 보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통해 이러한 컨펌 지옥의 발생 원인을 살펴봅니다.
객관성을 판단한다는 이유로 자주 등장하는 시추에이션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그 과정에서 얻은 말빨을 갖고 있다면, 입사 초기에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합니다. 내 디자인에 별다른 이유 없이 태클을 걸려는 자. 논리와 이론으로 봉인합니다. 태클 들어오기 전에 현란한 혓바닥 드리블을 보여주세요.
뭔가를 고민하며 생각하고 디자인했다면, 대본 없이 떠드는 것 일도 아니니까요. 이미 모든 디자인적 계획은 머릿속에 있지 않습니까? 색상이나 톤, 버튼의 크기나 위치는 왜 이렇게 정해진 건지. 저마다 타당한 이유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도 다 계획이 있다는 걸 보여주세요! 만약 그리고 혹시, 별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시안 작업을 진행했다
급하게 여기저기 디자인을 모방하느라 미처 말할 거리를 준비하지 못했다
내 무의식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가 작업했다
자만디(자연스럽게 만드는 디자인)를 추구한다
나는 디자이너다. 디자이너는 오직 디자인으로 말한다
경력이 적거나 신입이다. 입 열기 무섭다
위 여섯 가지 항목 중(항목이 좀 이상하다 느껴지는 건 기분 탓입니다. 어차피 빠져나갈 구멍은 없...). 단 하나라도 포함된다면 우리는 '그들의 부당한 평가'를 받아 마땅한 겁니다. 세상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떠한 부연설명 없이 오직 디자인만으로 다수의 상대를 설득하려는 행위. 상점 차려놓고 멍하니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짓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뭔가를 팔려면 입을 여세요!
디자인을 모르는 자들이 나의 디자인을 평가한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부당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컨펌할 권리나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자가 대표님이죠. 월권을 행사하는 게 아닌 겁니다. 컨펌할 대표의 권리를 부당하다 느끼고 저항하는 것 또한 월권이죠. 여기까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면 스크롤을 내리지 말고 뒤로 가기를 누릅니다.
맨 처음 언급했던 상황입니다. 딱히 얻을 게 없는 우리만의 머드축제라고 해야 할까요? 에이전시처럼 외부인(클라이언트)이 컨펌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대개의 경우 내부 디자이너중 경력자(오래된 자)의 결과물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가 만든 건지 숨기고 제출해도 주로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자주 범하던 실수는 전체가 아닌 부분 부분의 디자인을 본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아이콘도 화려하고, 버튼도 화려하고 위아더 화려하죠. 특히나 어떤 효과를 강하게 주는 편집 스킬 같은 것에 꽤 집착합니다. 투머치 해지죠.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배색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모든 요소에 파스텔톤의 컬러를 사용한다는 겁니다. 자연스레 원색 계열의 컬러로 포인트를 주며 강약을 준 시안에 밀리게 되죠.
위에 언급한 이유를 제외하고, 근본적으로 시니어가 유리한 이유. 컨펌하는 자의 취향에 꽤 근접해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과정을 한 번이라도 더 겪어봤고, 세대차이도 덜하죠. 그러니 부디 내부 디자이너끼리의 경쟁으로 인해 서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따지고 보면 후배와 겨루는 선배가 잃을 것이 더 많습니다. 가끔 주니어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시니어가 쿨한 척 "오! 이번 디자인 꽤 잘했어! 고생했다."라며 웃는 거. 그거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
대표나 클라이언트 다음으로 난이도 있는 컨펌 집단이며, 개발적인 논리로 디자인에 접근합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고인물들을 제외하곤 그들 중 대부분 맞는 말을 합니다. 로직. 사용자 플로우나 퍼포먼스에 관련한 기술적 의견을 건넨다면, 우리는 그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꽤 타당한 것이니 말이죠. 가끔 오래된 개발자 가운데, 단순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내 디자인에 발가락을 얹는 자들도 있습니다. 타당한 논리로 설득하세요. 기획자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잊지 마세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전문가 집단입니다. 내가 만든 결과물에 자신이 있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디자인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그들을 설득하는 게 마땅합니다.
또 누군가는 그런 말로 거드름을 핍니다. "나도 디자이너 출신인데 말이지..." 위에 언급한 것들을 이해했다면 응용으로 대처가 가능합니다. 거드름 연타로 짜증이 난다면 그리 말해주세요. "그래서 디자인은 왜 포기하신거죠?"라고 말이죠. "나 ○○였어."식의 단순과거형은 오늘을 사는 현재진행형에게 집니다.
가끔 필드에서 개발자 출신의 대표가 출현하는데요. 포기하세요. 자본과 이론의 콤비네이션은 실로 강력하니까요.
여러 개의 시안, 잦은 수정. 며칠을 너머 몇 주간 그들의 취향을 맞춰봐도 컨펌이 나지 않는 상황. 에이전시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인하우스에서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 스트레스의 정도가 많이 차이 납니다. 영업한 자도 나 몰라라, 기획자도 나 몰라라, 대표님도 나 몰라라. 정말 미쳐 돌아버릴 겁니다. 그렇게 시안의 넘버링이 두 자릿수를 넘어간다면, 결국은 계약 파기. 프로젝트 취소라는 엔딩을 맞이합니다.
중소 에이전시. 진상급인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며 최전방에서 작업자를 보호하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수비를 해야 할 기획자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되죠.(기획자의 업무는 기업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개의 에이전시는 계약서상 수정 횟수나 제공하는 시안의 개수를 정해놓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저지선 구축이 가능한데, 일하고 있는 곳이 영세하다면 당장 받은 계약금이 아쉬워서라도 강하게 내칠 수 없죠. 그 계약금으로 직원들 월급을 줬을 테니.
늦게나마 레퍼런스를 명확하게 요청하고, 디자이너는 결국 자존심을 버리며 카피캣이 됩니다. 선수 보호 차원 또는 보여주기 식의 이유로 담당자 교체가 일어나기도 하고요. 오죽하면 그런 말도 있을까요?
"우리에겐 최초 원본이 있다." 아주 조금, 쬐에에에에끔 위안이 됩니다.
무겁고 짜증 나는 주제. 일부러 가볍게 풀어봤습니다. 어쩌면 컨펌 잘되는 방법을 찾는 일은 우주의 미스터리를 푸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께 의견을 좀 구하고 싶습니다. 위와 같은 다양한 컨펌 지옥을 각자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다양한 노하우와 필살기 같은걸 공유해주세요. 의견 주시면 다시 정리해서 글에 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