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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가 Jun 04. 2021

한국 디자이너에겐 허락되지 않은 풀스택

잡부로 전락하는폴리매스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며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 그들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고, 연결을 통해 창의성으로 이끌며, 총체적 사고와 방법론을 사용하여 시대를 이끌어 간다.

도서 폴리매스 중 - 와카스 아메드


와카스 아메드라는 자가 바라본 폴리매스의 정의입니다. 사전적 정의로 폴리매스(Polymath)는 '박식가'를 뜻합니다. 한 유명 매체에서 "AI의 등장으로 다양한 직업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예상되는 직업군을 나열한 적도 있습니다. 똑똑한 누군가는 그렇게 말합니다.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잠식해 들어오면, 폴리매스만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적어도 한 세대(30년) 동안. AI가 특정 한 가지 분야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것은 쉽겠지만,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복합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자들은 쉽사리 뛰어넘지 못할 거라고. 그건 불가능에 가까울 거라고.


개발 필드를 바라보면 '풀스택 개발자'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습니다. 프런트 엔드와 백엔드 영역을 넘나드는 전천후 개발자로 정의되죠. 과거 '유능한 웹마스터'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이들은 그 수가 적고, 풀스택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어려움이 따르기에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들을 '유니콘' 바라보듯 합니다.


풀스택 개발자의 로드맵 2021년판


*일부 한국 실무자들은 HTML, CSS 마크업(UI Develop)을 프런트엔드로 보고 있지 않으며, 자바스크립트 관련 라이브러리(리액트가 대표적)나 프레임워크만 프런트엔드로 봅니다. 퍼블리셔를 개발자로 보지 않습니다. 결국 저는 그들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최근 한동안. 디자인 실무에서 '풀스택' 같은 게 존재할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생존수단으로 선택한 방향이긴 하나, 풀스택같은 '전천후 디자이너'를 지향했죠. 오래전 실무를 지내며 '풀스택'에 근접한 개발자들에게, "디자인에도 풀스택이 있다면, 너 같은 놈이 그리될 가능성이 있다."라는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살았건만. 안타깝게도 디자인 집단 안에서 소통 중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디자인 필드에서 폴리매스를 꿈꾸는건 주제 넘는 짓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정의하는 풀스택 디자이너, 마크업 영역은 개발집단과 공유합니다


위 그림처럼 해외에서 정의한 '풀스택 디자이너'. 이미 과거부터 한국의 오래된 실무의 디자이너들이 해 온 업무입니다. UX(과거 기획자 업무)를 다루는 수준의 차이가 있겠지만. 위 기준으로 풀스택 디자이너를 정의한다면 대한민국엔 '풀스택 개발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풀스택 디자이너'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런 정의를 바란 게 아닙니다. 한국의 실무 사정과는 너무 먼 차이가 있으며, 혹 저것이 인정된다면 풀스택 디자이너들은 지금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어디 가서 당당하게 풀스택 디자이너라 떠들어도 됩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할까요? 그 누구도 우리를 풀스택 디자이너라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잡부라 부릅니다. 잡 디자인을 하고 있다 말합니다. 이따위 표현 내가 떳떳하다면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조금은 억울한 구석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계속 나아가기 위해선 뭔가 답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답을 찾지 못하면, 저는 저의 후배 그리고 팀원들에게 그 어떤 조언도 해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잘못된 길을 알려줄 수 없으니. 한국 실정에 맞으며, 우리의 전문성과 대우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방향. 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뭔가를 얻는 최선의 방안. 여러 커뮤니티와 인터넷에 올라온 많은 글을 살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답을 찾지 못한 거죠. 애초 이따위 것을 고민하는 자가 많지 않다는 것도 일부 확인했습니다. 누군가는 마지못해 하고, 누군가는 그저 자기 개발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실행 중이었습니다. 그 외 대다수는 실행조차 하지 않죠. 당장 제가 주로 살핀 것들을 아래 정리해봅니다. 제가 속한 분야. IT 디자인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만약 UI 디자이너가 다른 분야로 확장을 시도한다면 그 범위가 너무 방대하다.

설령 확장했다 하더라도 해당 지식과 스킬의 사용빈도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다방면에 박식한 디자이너는 그 효용성이 좋지 못하다. 전문성이 보장되는가?

다른 분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디자이너는 이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풀스택스러운 디자이너가 되었다 치자. 우리의 대우는 달라지는가?

우리는 우리의 세부 업무를 선택할 권한이 없다.


꼭지별로 묶어둔 것. 조금 풀어서 설명해봅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세부 분야만 살펴봐도 정말 다양합니다. 당장의 실무만 봐도 UI, 그래픽, 출판/편집, 캐릭터/애니메이션, 광고, 영상/모션 등이 포함됩니다. 몇 해 전부터는 UX도 기본 업무에 포함되었죠. 규모가 큰 기업체라면 각 세부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하기에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보통의 경우. 우리는 위에 언급한 분야 중 최소 2~3개의 영역을 소화하며 일하고 있죠. 그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UX를 살필 시간적 여력이 부족해집니다. 


자기 개발하는데 동기부여가 굳이 필요할까?


여기에 퍼블리싱, 기획, 마케팅 업무까지 강요당하고, 그리 살아가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죠. 더 정확하게는 'UI 디자인만 하는 UI 디자이너'가 소수라 생각합니다. 더 이상의 확장이 두려운 겁니다. 확장해도 대우가 달라지지 않으니 동기부여 또한 이뤄지지 않죠. 익숙지 않은 업무 탓에 정작 UI 디자인에 집중할 시간을 빼앗기게 되니, 전문성이 결여되고 있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 겁니다. 그런 생활의 반복으로 언젠가 찾아올 미래가 걱정되죠. 참 지랄 맞습니다. 전문가로 일하면서 전문성을 걱정하는 이 같은 현실이.


노래하는 보컬리스트를 뮤지션에 포함되는 세부 분야로 본다면, 저는 보컬리스트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닌 뮤지션이 되기를 희망하며 살아왔습니다. UI 디자이너가 아닌, 디자이너 그리고 개발집단에 포함된 개발자로 살고 싶었습니다. 노래만 하는 가수에게 "당신은 뮤지션인가요?"이라는 질문을 던지면, 겸손하게 "아니오. 아직 뮤지션이라 불리기엔 많이 부족합니다."라고 답하듯. 저 또한 아직 한참 부족하다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자들이 제 주변에도 존재하고,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같은 수 있습니다. 한국 실무에서,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측정하는 단위가 모호한 탓에 우리는 우리의 전문성을 의심합니다.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통장에 잔고도 쌓였습니다. 허나 그것 말곤 제 일터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디자인 집단 안에서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강하게 부정했지만 정작 돌아서니, 그가 던진 메시지가 대가리에 박혀 빠지질 않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기업을 굴리는 오너들의 문제인지,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의 문제인지.


웹디자인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다


외국의 것을 따라 한다고, 어느 날 UX 디자인 들고 와 한국형 UI/UX 디자이너를 만들더니. 언젠가 "외국에선 요즘 이렇게 한다더라."라며 또 어떤 업무를 우리에게 강요할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찰스 다윈, 일론 머스크. 자신의 전문분야를 뛰어넘어 한계를 극복한 유명한 전문가들입니다. 대표적인 폴리매스로 거론되며, 그들의 다뤘던 핵심 분야의 전문가조차 그들을 넘사벽이라 인정해버렸죠. 서로 다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을 롤모델로 삼습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나온다는 상식을 과감히 깨버린 자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에 맞게 지식과 경험은 계속 확장되어야 하죠. 그들은 그런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뭔가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엔 한계가 없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디자인을 하기로 결심했던 맨 처음 그날로 돌아가 봅니다. '멋진 걸 만드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될 거야.'라는 다짐. 혹은 그와 비슷했던 각자의 다짐들. 우리, 그 다짐에 얼마나 다가갔을까요?


이들이 디자이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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