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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가 Jun 19. 2020

디자인에 휘말리며~

웹 디자인 실무, 사수에 대한 이야기


WWW. 그러니까 우리가 월드와이드 웹이라 지칭하는 것이 생겨난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습니다. 정확하게는 31주년입니다. '벌써 30년인가?'라는 호기심에 인터넷을 처음 접했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니, 제가 직접적으로 겪은 웹은 1998년 쯤으로 기억납니다. 국내 PC방이 활성화된 이후에 말이죠. 이후 동네 한 골목에 서너 개의 PC방이 있을 정도로 시장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그에 따라 인터넷 사용자가 급증. 우리가 보는 웹사이트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당시 웹사이트라는 용어보단 '홈페이지'라 불렀습니다. 


'과연 국내 최초의 웹사이트는 무엇일까?'하고 찾아보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REONET)이라고 나오네요. 딱히 접속해본 적도 본 적도 없습니다. 당시 포털사이트 국내 1위였던 '야후(yahoo)'가 기억나네요. 아참 '심마니'도 기억납니다.


초기 포털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심마니(좌)와 야후코리아(우)


기업체마다 홈페이지라는 걸 하나쯤 갖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수도권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웹에이전시 창업 붐이 일어났습니다. 관련학과들이 빠르게 생겨났고 국가의 전폭적인 사업 지원, IT 전문 인력 양성 프로젝트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웹 시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블루오션이자 새로운 미래 일거리로 주목받게 되었고 '벤처기업' 하면 그것이 곧 홈페이지 제작업체이거나 관련 IT업체였습니다.


전국 곳곳의 편집/출판을 주업으로 삼던 기업체도 뛰어들며 한몫 챙기려는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꽤 돈이 되었거든요. 저 또한 실무에 진입하기 전 지인의 홈페이지를 제작해주고 일주일 만에 500만 원을 손에 쥐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무튼 그런 업계에 속해있던 디자이너 또는 어찌어찌 시작한 디자인 전공자들. 바로 그들의 우리의 선배이자 사수였던 1세대 웹 디자이너들입니다. 세대라는 의미를 사전적으로 본다면 30년을 주기로 따지니 어쩌면 우리도 웹디자인 1세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확실치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1세대고 2세대인 건지...


대표적인 1세대 웹디자이너, 우아한 형제들의 한명수 님 ⓒ인테리어브라더스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한국 웹디자인 시장에서 사수 없이 시작해 미친 듯이 맨 땅에 헤딩해가며 현 웹디자인 시장을 일군 장본인들. 그들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하나같이 '배울 곳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당연한 거겠죠? 그들이 시작이었으니까요. 자기도 모르게 또는 어쩌다 보니 웹 디자인에 휘말린 사람들.


일반적인 사수와 부사수의 모습


서론이 길었네요. 네. 이번 글은 많은 디자이너들의 고민거리. 바로 사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수(射手)'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뭔가를 발사하는 물건. 즉 총이나 활을 다루는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 해당 용어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군대'에 닿게 되죠. 대부분 군생활을 거친 한국 남자들이 전파한 은어 같은 겁니다.


요즘은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지만, 원래의 사수라는 단어는 그다지 좋은 의미에 활용된 게 아닙니다. 군생활에서의 사수. '나를 귀찮게 하거나 갈구고 뭔가를 지시하는 자' 무섭고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주로 직속상관을 욕할 때 그를 지칭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죠. 사수와 부사수.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란 단어보단 좋은 어감으로 다가오지만 실상 좋은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딱히 대체할 단어가 없습니다. 선배, 선임 정도가 있을까요? 스승이란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GNB를 수정해!! 어서! ⓒ어도비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中)


실무 초경력자들의 타의적 은퇴, 장기전인 경기 침체, 각종 관련 툴과 솔루션의 발달, 국가의 창업 지원. 이 모든 것이 맞물려 무분별하게 영세한 에이전시 창업이 늘어났습니다.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고 회사가 굴러가기보단 특정 솔루션을 기반으로 회사를 운영할 심보. 그리고 막무가내식으로 디자이너를 구하다 보니, 많은 디자이너들이 사수가 없는 업무 환경에 노출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은 기업체에서 연차나 경험이 풍부한 경력자를 고용해 디자인 파트를 맡기기엔 비용적으로 부담이 되니까요.


으아아! 나 혼자 뭘 어쩌라는 거야!!


기업 오너와 클라이언트의 무차별적이고 무분별한 요청에, 사회생활과 디자인 경험이 많지 않은 주니어 디자이너들은 하루하루가 '혼돈의 카오스'입니다. 학교나 학원에선 툴과 기초 이론만 알려줬습니다. "실무 가면 선임도 있고 다른 디자이너들도 있고 퍼블리셔도 있고 개발자고 있고.. 암튼 그럴 거다."라고 말해줬을 뿐, 오늘처럼 사무실에 덩그러니 혼자 버려져 포토샵만 멍하니 바라보는 현실은 그 누구도 말해준 적이 없습니다. 각종 커뮤니티나 포털을 살펴보면 이 같은 고민을 토로하는 글이 참 많습니다. 어느 정도 연차가 있는 주니어도 사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디자인 실무, 정말 사수 없이는 불가능한 걸까요? 힘이 드는 걸까요?


웹과 웹사이트가 탄생한 지 30년이 흘렀건만 경력 20년차 이상의 실무자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 사수들과 함께 지내며 현시점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우리의 선배들은 왜 보이지 않는 걸까요? 안타깝게도 그들은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여러분에게 밀려났습니다. 설령 그 과정에서 살아남았다 치더라도 경쟁관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험 있는 사수'는 중소 에이전시나 인하우스에서 필수요소가 아니니...


네!? 전 이제 겨우 2년 차인데요?


이십 대 중반인 4년 차를 시작하던 어느 날. 제 사수는 퇴사를 했고, 대표가 저를 불러 회유를 합니다. "위로 뽑긴 좀 그렇고, 밑으로 뽑아줄 테니까 네가 팀장 해볼래? 연봉 좀 올려줄게." 돈 몇백에 눈이 멉니다. 그다음에 펼쳐질 생지옥은 만 원짜리 지폐들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알았을까요? 그때의 사수가 제 마지막 사수였을 줄...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사수로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끔 그날의 마지막 사수에게 전화를 겁니다.


"이열~ 오랜만이네. 니 뭐하는데? 아직도 디자인 하나?"

"네 ㅋㅋㅋㅋ"

"신기허네! 슬슬 취직 안될껀데~ 징허다. 니도"


디자인판을 진작에 떠난 나의 마지막 사수. 그와 같은 사람들은 너무나 많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아래부터는 저와 같은 실수를 범해 생지옥에 진입하거나 혹은 애초부터 사수가 없는 디자이너를 위해 소소하며 주관적인 내용을 몇 자 적어봅니다.


혼자여도 잘 생기면 상관 없... (극 중 원빈은 결국 전쟁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음 *중요)


먼저 실무에서 사수가 하는 일과 그에 따라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살펴봅니다. 그리해야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그중 내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할 때 외부. 즉, 다른 포지션의 경험자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의지하거나 또는 검색엔진에 검색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디자인 실무에서의 사수


디자인 실무를 떠나서 대부분의 직장생활에서 사수는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꼭 디자인 선배가 아니어도 다른 포지션 경력자에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니 너무 힘 빠질 필요 없습니다. 보통의 사수가 하는 일을 아래 정리합니다.


- 실무 관련 스킬/노하우 및 이론 공유


초년생이라면 사수에게 가장 크게 기대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배움에 목말라있고 좋은 실무자로 자리잡기 위해 디자인 관련 스킬과 각종 노하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니까요. 사수가 존재하고 그가 누군가를 코칭하는 걸 즐기는 타입이라면 꽤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빨대 꽂기'가 수월해집니다. 스킬과 노하우. 대개의 경우 사수의 연차나 경험이 많을수록 그에 비례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감각'이라는 건 잘 전수되지 않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전달되는 것들이 아니며 대부분 타고납니다. 사수에게 뭔가를 전수받는 과정에서 감각이 늘고 있다는 오판.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안목이 높아진다거나 뭔가를 카피하는 능력.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포토샵이나 각종 그래픽 툴에서 표현하는 스킬이 향상한 거지 감각 자체가 좋아졌다 보기 어렵습니다. 의구심이 생긴다면 그간 해보지 않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디자인을 혼자 시도해보세요. 뭔가를 카피하지 말고 말이죠. 감각이 증가했다면 그 산출물이 꽤 높은 수준으로 나와야 합니다.


또한 실무에서 사수가 누군갈 교육할 여력이 없습니다. 회사는 교육기관이 아니며 매일매일 업무에 치이는 상황에서 둘이 다정히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습니다. 이럴 땐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역으로 사수에게 질문공세를 퍼붓는 수밖에... 돌아오는 피드백이 싸늘하다면 그 사수에게 얻을 건 딱히 없는 겁니다. 그도 사람이라 피곤합니다. 혹은 그도 모른다거나...


- 업무배분 및 각종 이슈 대응/예측


사수가 여러분의 능력을 잘 파악했을 때 좋은 업무배분이 일어납니다. 누군 속도가 빠르고 누군가는 색을 잘 잡아내고 등등. 꼭 사수가 없더라도 함께 하는 동료. 오더를 주는 모든 이가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업무상 발생하는 각종 이슈에 빠르게 대처하거나 점쟁이 마냥 예측하는 능력. 연차를 떠나서 경험이 많은 자여야 가능합니다. 이도 마찬가지로 꼭 디자이너 선임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 디자인 실무 최전방에서 팀원 관리/보호


사수가 없을 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실드를 쳐줄 놈이 없다는 것. 외부에서 날아오는 총탄을 내가 다 처맞아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사수는 꽤 좋은 총알받이입니다. 사수 놈이 어떤 성향이건 일단 친해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습니다. 혹 사무실 구석에서 매일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이는 사수 놈을 발견했다면 살짝 달리 보아주세요. 사장실에 질질 끌려가서 욕받이를 하는 자 일수도 있습니다.


- 내부 시스템 문제(업무환경)에 대한 개선 및 자정 작용


30년 동안 굴러온 웹디자인 필드이기에 암만 쌈마이스럽게 굴러간다 해도 일반적인 업무 프로세스라는 게 존재합니다. 경험자인 사수는 이런 프로세스를 회사 내부에 잘 적용할 의무가 있으며 만약 그것이 잘 이뤄지지 않을 경우.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사장실로 뛰어가는 자여야만 합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통 연봉협상 시즌, 사수의 해당 능력은 잠시 사라집니다.


함께 일하는 모두는 사람. 나태해지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퇴사를 결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관리와 자정. 사수의 몫입니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채찍질. 부사수를 위함일 수 있습니다.


- 그 외 사회적/인간적 선배로서의 작용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있으나마 나한 쓰레기 같은 사람. 그런 자가 사수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습니다. 할 말은 참 많지만 그만 알아보겠습니다. 관련 내용 이미지로 대체합니다.


네 그러합니다.


어차피 디자인에 휘말린 인생. 유니콘 같은 좋은 사수를 찾아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자신의 안위를 취할 목적이라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이미 웹디자인 필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데이터가 인터넷에 쌓여있고 인강, 교육기관, 관련 칼럼 등에서 사수에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르는 게 있다면 찾아보고 뭘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각종 디자인 커뮤니티를 활용해보세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다시 학원으로 향해도 좋습니다.


빨간펜을 들고 집으로 찾아오던 선생님께서 그러셨습니다.


"혼자 공부하는 법을 알아야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단다. 이 문제는 틀렸어(빨간펜 찍-)"



맨 처음 타이틀로 활용한 이미지는 영화 '장사리'의 포스터 이미지입니다. 별다른 전투 경험 없이 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 희생하신 대한민국 학도병 여러분께 이 글을 빌어 감사하다는 인사 전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진정한 사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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