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는 명품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인식되는 대표적인 오트 쿠튀르이다. 오트 쿠튀르란 희소성의 가치를 바탕으로 권위 있는 의상실에서 만들어진 최고급 맞춤복을 말한다.
티에리 에르메스(Tierry Hermès)가 19세기경 창립한 에르메스는 본래 마구(馬具) 용품을 전문적으로 만들던 회사였다. 당시 마차는 귀족의 사치품으로써 수요가 많은 제품이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과 말에게 편안한 마구 용품을 만들고자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꼼꼼하고 정확한 제품을 제작하여 당대의 독보적인 마구상이 되었다.
에르메스는 어느 날 방문한 미국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 후드에 달려 있는 지퍼를 보고는 영감을 받게 된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지퍼를 가방에 도입해 여행용 가방을 제작했고, 이것을 시작으로 지금의 패션 브랜드인 에르메스가 탄생했다. 에르메스의 철학은 철저한 수작업과 장인정신이다. 로고의 마부석이 비어있는 이유는 고객이 주인이라는 마인드에서 비롯했다. 그들은 제작부터 수리까지 담당 장인을 배정하고 언제나 같은 품질을 유지하고 보증함으로써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나갔다.
오트 쿠튀르는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그 해 패션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일종의 이정표였다. 그리고 수작업에 의해 극소량만 제작되기 때문에 의류라기보다는 사실상 예술품에 가까웠다. 실용성은 낮았고 비싼 원단과 인건비로 인해 가격을 책정할 수 없거나 매우 비쌌다.
이러한 오트 쿠튀르의 정반대에 있는 것이 바로 프레타포르테이다. 이들은 오트 쿠튀르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대중이 입을 수 있도록 실용적으로 제작한 기성복을 말한다.
근현대에 이르러 패션의 중심은 오트 쿠튀르에서 프레타포르테로 옮겨갔다. 흔히 말하는 세계 3대 명품 패션 브랜드인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은 그들의 프레타포르테 계열 제품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세계 4대 패션 위크인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 컬렉션 역시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으로 귀족의 몰락과 민주주의의 시작이 있었다. 신분을 상징하던 패션은 더 이상 귀족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대중들도 패션을 통해 개성과 부를 드러내면서 패션은 산업이 되었다.
이때 프랑스 패션계에서 유일하게 대량생산을 추구했던 브랜드가 바로 샤넬이었다.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은 코르셋 해방을 추구하는 실용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활동성이 좋은 제품들을 만들었다. 샤넬은 대중을 위한 제품이면서도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디자인 브랜드가 되길 원했다. "럭셔리는 편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럭셔리가 아니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일상에서는 입을 수 없었던 오트 쿠튀르보다는 프레타포르테를 중요시했다. 에르메스가 복제로부터 제품을 철저히 보호하려고 하였다면, 샤넬은 종종 복제품을 묵인하기도 했는데, 그럴수록 정품의 진가는 더 명확하게 드러나며 브랜드의 가치를 높였다.
샤넬은 디자인 브랜드인 동시에, 파리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예술문화의 후원자였다. 대표적으로 오페레타 <청춘열차>는 연출 댜길레프, 대본 장 콕토, 의상은 가브리엘 샤넬, 미술은 피카소가 참여한 콜라보레이션 작품이었다. 다른 분야와의 활발한 협업은 샤넬이 더욱 대중적이고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가 되는데 기여했다.
산업의 발전과 함께 소품종 대량생산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하얀 티셔츠는 공산품처럼 찍어낼 수 있지만, 유행에 민감한 패션 잡화는 디자인의 교체주기가 빠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거의 모든 명품 브랜드들이 주문에 의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제작하고 있다. 명품 가방을 구입하기 위해서 짧게는 반년, 길게는 1~2년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지만, 수요는 점점 더 많아지며 명품 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티처빌, 유럽에 미치다(프랑스, 이탈리아 편)
더블유코리아, 낯선 아름다움 (2021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
VOGUE RUNWAY, SPRING 2021 READY-TO-WEAR
나무위키, 오트 쿠튀르/프레타포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