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가도 언제 다 키우나 싶을 때

by 마치

아이가 두세살 쯤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내가 병’에 걸려 엄마가 하려는 행동을 멈추게 한 후 외친다. “내가! 내가 할래!” 아직 말을 못할 때에는 손을 번쩍 들어 이리저리 휘저으며 본인이 하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를 했다. 시간이 없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먼저 누르기라도 하면 아이의 대성통곡이 시작됐다. 마음이 급해 버튼부터 누른 내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달걀말이를 하려고 달걀을 깨고 푸는 일도,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따라 마시는 것도, 칫솔에 치약을 짜는 일도 모두 스스로 해보고 싶은 아이가 버거울 때도 있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치워야 할게 많아지니 결국 집안일도 늘어났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가장 중요한 육퇴시간의 지연으로 귀결된다.

치실도 거울보고 내가! 요리도 내가!

하지만 당시 다양한 육아서와 전문가들의 동영상에서는 ‘내가 내가 병’은 아이에게 성취감을 갖고 해 주고 나아가 창의성, 독립성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는, 부모라면 혹하는 효과를 가져다주는 ‘병’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더 어린 시절에는 자기 주도 이유식이라 하며 부엌 바닥을 매일, 아니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쓸고 닦게 했던 육아도 유행이었다.

아이가 영유아기였을 때는 그저 하루하루 버티기에만 신경 썼다. 미래의 일을 상상하거나 걱정할 새 없이 아침에 눈 뜨면 그날의 육퇴 시간을 기다리며 아침 이유식-기저귀-간식-기저귀-낮잠-기저귀 그리고 다시 점심 이유식부터 시작하는 쳇바퀴 속에서 지냈다.

여기서 아기보다 지저분한 식탁과 바닥에 떨어진 음식이 먼저 보인다면 당신은 주부..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때는 영원 같았던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어느덧 이제는 학교에 혼자 가겠다는 말까지 한다. 같이 손잡고 동네를 걷다가도 맞은편에서 또래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놓는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앞서 걸어가는데 나는 그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학교에 혼자 가겠다고 한 날, 아이 혼자 탄 엘리베이터가 1층까지 무사히(?) 가는 것을 확인하고 얼른 베란다 문을 열어 얼굴을 내밀었다. 9층에서 바라보는 아이는 흡사 작은 인형 같았다. 나를 향해 뒤돌아 손을 흔들어주고는 종종걸음으로 씩씩하게 걷는 아이의 모습을 맞은편 건물에 가려져 안 보일 때까지 바라봤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날 오후에는 학교에 혼자 걸어간 기념으로 특별한 날에만 먹는 맥도날드를 가기로 했다. 매장에 도착해 신이 나 앞서가는 아이가 문을 밀고 휙 들어가 버린다. 문을 열 때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는 게 매너라고 알려줬다. 이미 예전부터 알려주던 것이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처음 말해주듯 천천히 말했고 아이도 처음 들은 듯 들었다. 이번에는 손을 씻고 온 아이 소매가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다. 손 씻기 전에는 소매를 걷어올리라는 말을 앞으로 300번쯤은 더 해야 기억하려나 싶었다. 내가 남자화장실까지 따라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기억할 때까지 말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주문한 음식을 먹으려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캔음료를 따려다가 손톱이 살짝 깨졌다. 내가 마시려고 따려는데 본인이 해보겠다고 선뜻 나선 것이다. 오랜만에 마주친 ‘내가 내가 병’이었다. 매장을 나서며 해피밀 장난감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폴짝폴짝 뛰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언제 다 키우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