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고아가 된다

by 마치

온 가족이 모인 추석 연휴, 고단함에 네모 반듯한 베개를 베고 잠시 누우셨던 할머니는 그 후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셨다. 형의 다급한 목소리를 눈치채고 방으로 달려간 아빠는 ‘엄마! 엄마!’를 외치며 한 손으로는 할머니의 어깨를 흔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연신 눈을 훔쳤다. 처음 보는 아빠의 우는 모습이었다.


이 날의 풍경이 사진 찍힌 듯 머릿속에 각인되어 이따금 불현듯이 생각나곤 한다. 아빠의 우는 모습과 잠든 듯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영화의 짧은 예고편처럼 장면 하나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몇 년 후,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엄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빠가 너무 안 됐어. 이제 고아가 된 거잖아.”


평소 친가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유대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미처 몰랐다. 아빠도 누군가의 아들이었다는 걸. (심지어 막내아들이었다)


평소 말수가 적은 아빠는 할머니를 만나도 별말 없이 ‘네’, ‘저녁은 드셨어요?’, ‘다음 달에 한 번 올게요. “ 정도의 말만 건넸다. 그래서 숨을 쉬지 않는 할머니를 붙잡고 ’ 엄마! 엄마!‘라고 외치는 아빠의 모습은 기껏해야 중학생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 같았다.


가는데 순서 없다지만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내 머리에서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내 아이가 클수록 내 부모님은 점점 작고 약해졌다. 나도 언젠가 고아가 될 거라 생각하면 금방 눈에 눈물부터 고여버린다. 아직 두 분 다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괜히 청승 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도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라는 위치의 책임감과 무게감이 상당해 ‘부모가 기댈 수 있는 부모님‘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됐다. 철이 든 걸까.


아빠는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 어떻게 슬픔을 받아들였을까. ‘고아가 됐다’는 의미를 감히 상상해 볼 수가 없다. 혼자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부모님을 생각했을까, 부모님의 얼굴이 언뜻언뜻 보이는 형과 누나를 만나 위로를 받았을까.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는 투병 중 자신의 끝을 예견하고 마지막 소설을 집필한다. 이 마지막 소설 『바움가트너』에서 주인공 바움가트너는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은 고통을 환지통에 비유한다. 신체의 일부가 절단된 후에도 없어진 부위가 존재하는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는 환지통처럼 “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있는 몸에 붙어 있었고, 사라진 사람은 한때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아’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한 슬픔을 지금은 헤아릴 수 없지만 바움가트너가 말한 환지통처럼 분명 신체의 일부가 없어진 고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블라인드 사이를 내다보니 하얀 눈이 온 세상을 조용히 뒤덮고 있었다. 전날 밤 깜깜한 방에 누워 또 불현듯 생각났던 엄마 잃은 중학생 같던 아빠의 모습이 겹쳐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얀 풍경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한번 걸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