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인생에서 가장 재밌었던 때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초등학교 시절을 꼽을 만큼 즐거운 추억이 많았다. 계절별로 스포츠를 배우고 주말까지 끼고 하는 각종 행사를 통해 학교 운동장에서 캠프도 하고 세종문화회관 무대에도 서보았다. 다양한 활동과 체험이 나에게 잘 맞아 즐거웠지만 부모님은 나를 케어하며 학교와 행사장을 오고 가느라 많이 힘드셨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면 사립초등학교를 나와서 특출 난 곳이 있다던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훌륭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부모님이 나에게 한 ‘투자’만큼의 결과가 안 나온 것 같다했더니 엄마는 그때 네가 재밌게 즐겼으면 됐다고 했다. 고맙고, 그래도 미안했다.
그리고 유치원생 아들이 있는 걸 아는 내 알고리즘은 사립초등학교의 지원일정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 고민은 일단 추첨에서 뽑히고 나서 하는 거다 등 사립초등학교 입학에 관한 여러 가지 격언(?)들이 있다. 저출산으로 더욱 뜨거워진 교육열과 한정된 학교수로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은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 아이도 사립초등학교로 보내고 싶은가이다.
부모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
초등학교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장단점과 함께 고민해 봤다. 사립초등학교는 다양한 교육 커리큘럼이 있지만 학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집에서 멀어 등교시간이 이르다. 나는 이른 등교시간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행히 아이는 아침에 잘 일어나 유치원 버스도 놓친 적이 없었고, 멀미도 거의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학교급식에 대해 찾아보았다. 비교적 공립학교의 식사가 잘 나온다는 의견이 많았다. 공립은 그만큼 윗선에서의 감시(?)와 검사가 많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검증된 사실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내가 보내고 싶은 학원에 대해 생각해 봤다. 시키고 싶은 악기나 운동, 기타 특별활동이 있다면 사립초를 보내 학교에서 배우게 할지, 공립을 보내 내가 고른 학원으로 보낼지 고민해 볼 수 있다. 나는 보내고 싶은 특정한 학원은 없었고, 아이가 첫 1년 동안 여러 가지를 체험하며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걸 골라 꾸준히 했으면 했다.
아이의 성향
아이의 신생아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의 성향을 생각해 보았다. 외동이라 혼자 노는 데에는 도를 텄지만 또 친구들을 매우 사랑한다. 학원이나 쇼핑몰에서 우연히 유치원 친구를 만나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그때 만났던 이야기를 몇 개월 동안 수시로 불쑥불쑥 꺼낸다. 사실 아이는 공립 초등학교에 가건, 사립 초등학교에 가건 친구들은 즐겁게 사귈 것 같았다. 단지 동네친구가 없어서 괜찮을까, 집 근처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힘들겠지, 나중에 근처 중학교를 가면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으면 어쩌지 등의 고민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무릎을 탁 치는 결정을 내릴 수 없어 추첨에서 뽑히고 고민하라는 지혜를 따르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집에서 스쿨버스로 오고 갈 만한 거리의 학교 두 군데를 정해 지원했다.
그리고 결전의 추첨 날.
실시간으로 중계해 주는 추첨 방송을 보며 괜히 떨렸다. 두 곳의 결과는 각각 낙첨과 대기 60번. 대기 60번이면 사실상 낙첨과 다름없다.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던 것도 아니었는데 막상 떨어지니 씁쓸했다.
그 주 주말, 아이와 동네 산책을 나가면서 학교 앞을 지나갔다. 곧 다니게 될 초등학교라고 알려주니 학교도 운동장도 엄청 크다며 좋아한다. 저울질 없이 순수하게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그간 내가 했던 고민들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휴지조각처럼 하찮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