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
워낙 호평이 자자한 책이라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 기다리다 읽기 시작했다.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다가와도, 잠이 쏟아져도, 쉽게 덮을 수 없었던 SF소설이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국립연구소에서 천재로 불렸다던 작가 앤디 위어는 현존하는 물리적 법칙을 하나도 깨뜨리지 않고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생소한 과학용어나 지식이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데, 과학에 문외한인 내가 읽어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앤디 위어가 천재 과학도이자 뛰어난 스토리텔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그레이스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서 홀로 깨어난다. 우주선 곳곳의 ‘흔적’ 들을 찾아다니며 이 우주선에 어떻게 타게 됐는지, 무엇을 위해 왔는지 점차 기억이 되살아 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 이상한 신호가 잡히고 정체 모를 ‘외계인’이 등장한다. 그레이스는 거미를 닮은듯한 이 ’외계인‘에게 로키라는 이름을 붙이고 서로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로키도 자신과 같은 임무로 멀리 떠나왔음을 알게 된다.
작품 제목 속 ‘헤일메리’는 미식축구용어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고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패스나 슛이라고 한다. 그만큼 해내기 어려운 임무를 안고 그레이스와 로키가 만난 것이다.
광활한 우주에서 그레이스와 로키가 만나면서 더욱 책을 덮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 둘의 티키타카 덕분이었다. 둘 다 자신의 고향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실상 ’편도행 우주선‘을 탄 우울한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며 서로 ’문화교류‘도 한다. 로키의 고향 ‘에리드’에서는 상대방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게 배려이자 예의 같은 것이며, 식사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레이스는 당황하면서도 로키를 존중하고 그대로 따라준다. 로키의 귀여운 말투와 직설적인 질문은 둘의 티키타카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너 지켜봄, 질문?” 로키가 다시 묻는다.
“아니. “
“지켜봐. “
“내가 네 자는 모습을 지켜봤으면 좋겠어?”
“그래. 원함, 원함, 원함.”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우리 사이에서 같은 단어를 세 번 말하는 것은 엄청난 강조를 의미하게 됐다.
“왜?”
“네가 지켜보면 더 잘 잠. “
그는 표현할 방법을 찾으려는 듯 팔 몇 개를 흔든다. “에리디언들은 그렇게 함.”
로키가 등딱지를 약간 기울인다. “너 표본 밀폐했는데 표본 접근 못함, 질문?”
“응.”
“보통은 너 안 멍청. 왜 멍청, 질문?”
“인간은 잠을 자야 할 때 멍청해지거든. 통증을 멈추는 약을 먹을 때도 그렇고. 난 지금 피곤하기도 하고 약도 먹었어.”
“넌 자야 함.”
읽다 보면 이 둘은 더 이상 서로 다른 종족이나 외계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같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추억 가득한 편안한 친구사이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후반부에 둘이 헤어지는 장면은 눈물 없인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헤어지는 건가 싶을 때 그레이스는 무언가를 깨닫고 (지구로 돌아갔을 때 얻을 영웅대접과 명예 그리고 목숨까지 제쳐두고) 다시 로키를 만나러 가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나를 그리워할 것임. 질문? 나는 너는 그리워할 것임. 너는 친구임. “
“응. 나도 널 그리워할 거야.”
작가 앤디 위어의 인터뷰에서 작품 속 위트와 낙관론이 어디에서 온건지에 대한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가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항상 인류에 대해 굳게 믿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구급차를 부르고, 구급차가 지나가면 길을 비켜주는 이런 일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이 서로를 돕기 위한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거든요. 넓은 시야로 본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미래를 더 좋게 만들고 있다고 믿습니다.”
기후위기와 전쟁 그리고 정치싸움이 만연한 요즘사회에서 보기 드문 낙관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은 후에는 나도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평범한 그레이스의 모습에 사실은 마음속 깊숙이 인류애를 품고 있는 우리 개개인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초반에서 기억이 돌아온 그레이스는 자신을 겁쟁이라고 하지만, 로키를 통해 지구를 구한다는 범우주적인 미션도 처음에는 평범하고 작은 선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더 노력함.” 그가 말한다. “우리 포기 안 함. 우리 더 열심히 노력함. 우리 용감함.”
“그래, 맞아.”
나는 이 임무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날아가 버렸기에 마지막 순간에 투입된 대체 인력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와 있다.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지 몰라도, 난 여기에 와 있다. 당시에 나는 이걸 자살 임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원한 게 틀림없었다. 지구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건 대단한 일이다.
‘겁쟁이’ 그레이스도 결국 지구를 위해 목숨을 바쳐 우주선에 탔고, 친구를 위해 기꺼이 고향으로 가는 길을 포기했다. 또한 지구에서도 여러 주요 국가가 싸움 없이 머리를 맞대고 지구를 구할 방법을 의논하고, 러시아, 중국 등에 있는 우주비행사들이 자진해서 우주선에 타겠다고 모이는 모습은 지금 우리 상황에 빗대어 보면 외계인 ‘로키’를 만나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모습으로도 보인다.
2026년 3월 중에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한다고 한다. 로키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로키의 목소리는 어떨지, 지구와 에리드를 위험에 빠뜨린 ‘아스트로 파지‘는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하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헤어질 장면을 상상하니 벌써 마음이 울컥하지만 오랜만에 기대를 안고 영화 개봉을 기다려본다.
끝으로 작품 전체를 대변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그레이스와 로키의 대사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그레이스와 로키같은 인류라면 어떤 위기에도 적응하고 해결방법을 찾아낼 것이라 생각하니 요즘 같은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 너랑 나는 둘 다 우리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함. 왜, 질문? 진화는 죽음을 싫어함.”
“종족 전체로 봐서 좋은 일이잖아.” 내가 말한다. “자기희생 본능은 종 전체가 지속될 가능성을 높여줘.”
“모든 에리디언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지는 않음.”
나는 키득거린다. “인간들도 그래.”
“너랑 나는 좋은 사람.” 로키가 말한다.
“그러게.” 나는 미소 짓는다. “그런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