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게 세상을 구한다’라는 말이 한때 유행어처럼 돌았다.
나에게 ‘귀여운 것’이란 손톱만 한 것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형형 색깔의 스티커, 장인정신으로 며칠에 걸쳐 만들었을 것 같은 미니어처 음식 모형 등 소위 말하는 ‘예쁜 쓰레기들‘이었다. ‘쓰레기’지만 귀엽기 때문에, 오랜만에 새로 나온 책 구경 가볼까 하고 대형 서점에 가면 (집을 나설 때의 결심이 무색하게) 정작 책보다는 문구잡화코너에서 대부분을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 귀여운 것‘에 대한 범위가 바다에 그물을 펼치듯 순식간에 넓어졌다.
첫 돌이 지나고 아이가 혼자 걷고 뛰어다닐 수 있게 될 때까지 항상 새로운 귀여움이 날 웃음 짓게 했다. 엉덩이와 혼연일체 된 묵직한 기저귀를 차고 뒤뚱뒤뚱 걷는 뒷모습은 치명적인 귀여움, 간식창고에서 몰래 꺼내먹어 입 주변에 초콜릿을 잔뜩 묻혀 놓고는 안 먹었다고 시치미 떼는 뻔뻔한 귀여움도 있다. 간식이나 밥을 먹다가 그대로 잠이든 모습, 쪽지에 삐뚤빼뚤하고 엉뚱하게 쓴 글씨 (이 쪽지는 고이 접어 내 지갑에 넣어두었다), 뽀로로에 영혼을 빼앗긴 얼굴 등 잊지 않고 싶은 귀여운 순간들이 많았다. 그리고 심지어 (심지어!!라고 강조한다) 아이가 변기에 싸놓은 응아도 귀엽다.
아이가 했던 말 중에서도 잘못말했지만 귀여워서 일부러 고쳐주지 않았던 적도 있다. ‘앉지 마’를 ‘앉으지 마’로, ‘컴퓨터’를 ‘컴튜버’로 (아마 컴퓨터와 유튜브가 합쳐진 것 같다) 말하곤 했다. 잘못 말했지만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말하는 그 표정이 귀여워 나는 자꾸 솟아오르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진지하게 들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내가 귀여운 것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다.
아이와 나란히 걷다 보면 아이가 순간 걸음을 멈추는 때가 있다. 처음에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자동차처럼 나도 멈춰서 뭐지? 하고 아이를 살펴보곤 했었다. ‘뭐지?’가 ‘아.. 이번엔 또 뭐지..’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멈춰서 아이의 시선 끝에 닿은 것을 보고 이 순간이 귀여워서 잊지 않게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거리에서 아이의 걸음을 붙잡는 것들은 줄지어 지나가는 개미 떼, 작고 하얀 플라스틱 비비탄 총알, 잡초 뒤에 숨어 있는 길고양이 등이다. 그리고 그날은 바로 포도모양의 젤리였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의외로 작은 젤리, 사탕들이 길가에 잘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아파트 단지 안에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있는 마을에서 살고 있어 어린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길이어서도 그렇겠지만, 젤리는 작고 말랑말랑해 어른들도 걸으면서 꺼내 먹다가 손에서 놓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과일모양 젤리, 곰돌이 모양 젤리 등이 흙먼지를 안고 한 두 개씩 떨어져 있는데 이를 발견하면 아이는 꼭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먹을 수도 없는데 한 번씩 멈춰 서 목을 빼고 더러워진 젤리를 응시하는 모습이 귀엽고, 소근육 발달이 덜 돼서 자꾸만 손에서 젤리를 놓치는 다른 아이의 모습도 상상이 가 귀여웠다. (그 모습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 외에도 젤리 하나 사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치과치료받는 상상을 하면 이내 마음을 접게 된다)
내 아이도 언젠가는 엄마아빠보다 친구가 더 좋아 반항도 하고, 몸에는 까칠한 털이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도 이렇게 귀여울지,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배신감에 혹시 내가 우울증에라도 걸리는 게 아닐까 싶지만, 이런 과한 걱정은 내려놓고 일단 지금을 즐기기로 했다. 지금 내 옆에서 조잘대는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한번 더 안아주고, 귀여워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