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방 대청소는 처음이라

by 마치

*이번 글의 커버 이미지는 아이의 스케치북 그림을 디지털로 바꿔 편집하였습니다.


집안일은 꽤나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다.

시간이 걸리는 세탁기를 먼저 돌려놓고 시작한다던지, 환기 후 청소기를 돌린다던지 하는 순서와 동선을 짜야하고, 장소와 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청소 도구 및 방법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집안일에 능숙하지 못한 나는 ‘장비빨’을 세워보고자 청소도구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을 시작하고 며칠 동안은 알고리즘을 통해 천연세제 조합 꿀팁, 꼭 사야 하는 가성비 청소 제품,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창틀 청소하기 등 다양한 청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바로 아이 놀이방 정리 영상이었다. 여러 개의 심플한 플라스틱 상자에 자잘한 장난감 들을 종류별로 넣어 착착 쌓아두고, 납작한 오픈형 원목 서랍장에는 스케치북, 색종이, 크레파스 등의 미술도구를, 벤치로도 쓸 수 있는 커다란 서랍장에는 제법 큰 인형이나 로봇들을 넣어 숨긴다. 빨리 감기로 순식간에 방이 정리되는 영상을 보자 왠지 모를 쾌감까지 느껴졌다. 이제 출퇴근 걱정도 없고,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먹을 간식과 저녁 준비도 끝내놓았으니 얼른 놀이방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시작하기 전, 사실 정리보다는 버리고 싶은 게 많았다.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작은 로봇과 공룡들, 아기 때 쓰던 종 모양 딸랑이, 이젠 아이가 눈감고도 하는 (그래서 수준에 안 맞는 것 같은) 큼지막한 퍼즐들, 치과검진 후 받아온 각종 뽑기 장난감까지. 다 모으니 10리터 봉투 두 개가 꽉 찼다. 하지만 섣불리 버렸다간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찾을 때 난감해질 수 있어 일단 봉투를 다용도실 깊숙한 곳에 두었다. 올해 안에 찾지 않으면 내년에 다 버릴 계획이었다.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성 놀이방

놀이방에는 오픈형 3단 서랍장이 하나 있다. 높이는 낮지만 가로로 길게 아홉 개의 칸으로 나뉜 꽤 큰 서랍장이다. 다용도실로 가지 않고 살아남은 장난감들과 서랍장을 번갈아보며 어디에 어떤 물건을 둘지 고민했다. 누가 봤다면 꽤 심각한 고민을 하는 것 같이 보일만큼 쓸데없이 신중했다. 길이를 재고, 검색을 하고, 집에 있는 것 중에 쓸만한 것들을 찾았다. 제일 활용도가 좋았던 건 신발상자였다. 그동안 사거나 선물 받은 아이의 신발상자를 버리지 않고 모으니 훌륭한 정리함으로 쓸 수 있었다. 상자 크기도 적당해 길이도 크기도 제각각인 기차놀이 장난감을 모아 두기 좋았다. 다이소에서 산 작은 정리함 네 개는 서랍장 한 칸에 쏙 맞아 들어가 여기에는 작은 장난감들을 분류해 넣었다. 곤충 장난감, 노래 카드, 각종 캐릭터 피규어들의 자리가 되었고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정리함 앞에 라벨을 붙여 두었다.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를 위해 라벨에 해당 장난감의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나중에 아이는 이 라벨의 그림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옆 칸으로는 퍼즐과 보드게임 상자를 나란히 세워두고,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시리즈까지 남은 빈칸에 꽂아 두니 서랍장이 깔끔하게 채워졌다. 옷장에서 가져온 커다란 리빙박스 두 개는 서랍장 옆에 나란히 두어 하나에는 레고를, 또 하나에는 큰 로봇과 자동차 장난감을 쏟아부었다. 마지막으로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서랍장과 마주 보는 벽 한편에 작은 책상을 두고 보니 영상에서 봤던 감성 충만한 놀이방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아늑하고 깔끔해 보였다.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라벨의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이웃에게 나눔받은 땅콩 책상

어디에 무엇을 놓을까 고민했다고 했지만 사실 청소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가 어떤 장난감을 가장 많이 찾았는지, 손을 뻗었을 때 어디까지 닿았는지, 놀이방을 처음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리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바닥청소까지 끝냈다. 바닥에 깔만한 귀여운 러그는 같이 고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미쳤을 때 알람이 울렸고 (혹시 몰라서 아이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에 알람을 맞춰 놓는다)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놀이터에 붙잡혀있어야 하나 싶다가도 놀이방을 보고 좋아할 아이 얼굴을 떠올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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