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지 않았던 일 해보기

- 유치원 엄마들과의 플레이데이트

by 마치

유치원 엄마들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이 있다. 서른 명 남짓의 엄마들이 모여있는 대화방에서는 거의 매일 새로운 대화가 오고 간다. 이름 없는 물건의 주인을 찾기도 하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종이를 줬다고 얼버무리는데 가방엔 아무것도 없을 때 단체방에 물어보면 유치원 행사 안내 유인물이 바로 공유된다. 아이와 방문하기 좋은 주변 카페나 박물관뿐만 아니라 아동복 파격 세일과 같은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 실로 유용하고 고마운 단체방이 아닐 수 없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대화방은 아니지만 말풍선 속의 글자들만으로도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엄마들의 이미지를 유추하고 성향을 나눠볼 수 있다. 거의 모든 대화에 참여하며 아이의 일상을 시시콜콜하게 공유하고 리액션을 아끼지 않는 활발한 엄마, 대화는 많이 안 하지만 각종 육아정보 링크를 적극적으로 공유해 주는 엄마 그리고 대화보다는 주로 작은 이모티콘으로 공감표시만을 남기는 소극적인 엄마로 나눌 수 있다. 나는 후자인 소극적인 타입으로 대화에 거의 참여하진 않지만 공유받는 정보가 고마워 이모티콘으로 감사표시를 하는 정도이다. 평소 잘 돌아다니지 않아 공유할 정보도 없고, 정보가 있다 해도 나는 좋았지만 상대방은 별로일 수도 있고, 날씨에 따라 좋은 곳이 불편한 곳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필요한 걱정들 때문에 정보공유가 꺼려졌다.


그럭저럭 단체대화방에서 존재감을 유지하던 중, 짧은 여름방학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일주일 간의 길지 않은 기간임에도 대화방에서는 길게 느껴질 것 같아 벌써부터 무엇을 하며 보낼지 모르겠다며 고민 섞인 대화들이 오고 갔다. 그때 항상 활발히 대화를 주도하는 A엄마가 플레이데이트를 제안했다. 플레이데이트(Play date)는 영어단어 play와 date의 합성어로 단어 그대로 같이 놀기 위해(play) 만나는 약속을 잡는 것(date)이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는 억지로 만든 콩글리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검색해 보니 미국에서 아주 흔하게 쓰이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1984년에 최초로 사용된 단어로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무려 40여 년 전부터 쓰였다니, 공동육아는 국적과 시대를 막론하고 가뭄의 단비 같은 소중한 품앗이 었나 보다.

장소는 동네 근처에 있는, 계곡과 작은 모래놀이터가 딸린 브런치 카페였다. 정해진 요일과 시간도 나와 아이에게 비는 시간이었다. 간다면 아이는 분명히 매우 즐거워할 것이다. 하지만 망설여졌다. 여벌옷 등의 준비물 챙길 생각을 하니 귀찮았고, 아이들이 노는 동안 엄마들과 무슨 이야기를 할지 상상만으로도 어색하고 무안했다. 대화를 한다 해도 영양가 없이 시간만 죽이는 대화만 나누게 될 것 같아 의욕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며 두 손가락으로 말풍선을 올려 보냈다. “저도 갈게요!”

유치원 친구들을 유치원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그것도 물놀이와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는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이 모습을 보려고 귀찮음과 망설임을 이기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며 나름 긴장된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향했다.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서로 얼싸안고 모래놀이터로 뛰어 들어갔다. 그 사이 엄마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음식과 음료를 시키고 아이들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아 앉았다. 만남을 성사시킨 A엄마가 카페로 오기까지 아들과 얼마나 험난한 준비과정을 거쳤는지 이야기하며 대화가 시작되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엄마들과의 대화는 끊김이 없었다.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이 같은 나이대의 아이를 키우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 많았고,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그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알 수 있었다. 웃다가, 안타까워했다가, 격하게 공감했다가 다시 웃으면서 육아를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서로의 사소한 노력과 고생을 격려했다. 대화 중간중간 바라본 아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이의 더러워진 옷과 신발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뿌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약속을 잡기 전 했던 걱정이 얼마나 어리석고 틀에 갇힌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내가 주도해야 하는 모임도 아니었는데 낯선 이와의 대화에 왜 그렇게 겁부터 먹었었는지, 사람을 알아가는 대화에서 왜 영양가라는 걸 따졌는지 과거의 내 모습이 소심하고 옹졸해 보였다. 이번 기회로 갑자기 A엄마처럼 적극적이고 유쾌한 엄마가 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한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음에는 어떤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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