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버거울 때마다 꺼내보려 몇 자 남겨둡니다.

by 마치

육아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알게 해 준다.

별거 아닌 일에 갑자기 짜증이 올라오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모든 것을 나에게 의지하는 조그만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며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낸다. 주눅 든 표정으로 내 눈을 피하며 엉뚱한 말을 내뱉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더 화가 난다. 다시 더 큰 소리를 내고 그렇게 내 밑바닥까지 드러내고야 만다.


아이가 잠들고 가까스로 혼자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을 때 자괴감과 괴로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살면서 누군가의 면전에 대고 이렇게 화를 내본 적이 있었던가. 나보다 약자라는 생각에 아이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한 건 아닌지, 잠든 아이 곁에 아무렇게나 뒤엉켜있는 인형들이 인간이길 포기한 내 모습 같았다. 아이는 밥을 먹다 흘릴 수도 있고, 내가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어도 입맛에 안 맞으면 싫어할 수 있다. 아이도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기질과 취향이 있고 나는 부모로서 아이가 독립하기 전까지 돌보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때 탯줄로 이어져 내 뱃속에 소중히 품고 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다.

나는 가끔 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만다.


잘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저녁, 양치를 끝낸 아이가 소파에서 학습 만화책을 보고 있다. 양치 다 하면 치실 하자고 했던 내 말을 또 잊은 건지, 하기 싫어서 시간 끄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또 폭발했다. 한바탕 쏟아내고 치실을 하기 위해 마주 앉았다. 아이의 얼굴은 바닥을 응시한 채 돌멩이처럼 굳어 있었고 나는 치실을 도와주면서도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푸념 섞인 잔소리가 나온다.

“너 치실 안 하면 양치하다 만 거랑 똑같은 거야. 이러다 치과 가서 잇몸에 주사 맞고 엄청 아픈 치료 해야 돼.”
“치료받아서 아픈 사람은 너지만 엄마도 그럼 따라가야 하잖아. 가서 너 움직이지 않게 무릎 잡고, 달래고. 얼마나 진땀 빼는지 알아?”
“너도 나중에 크면 알겠지만 아픈 치료만큼 무서운 게 치료비야. 치과 치료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아? 네가 좋아하는 점핑 키즈카페, 한 달 동안 매일 가도 치료비가 더 들어.”

공포조장과 내 수고에 대한 생색 그리고 돈까지 들먹인 최악의 치사한 잔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추임새처럼 한숨을 뱉을 때마다 아이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내 한숨마다 아이는 속으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불안해했을까. 그날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너무나도 부끄럽고 미안했다. 병원에 데려가고 돌보는 건 엄마의 당연한 일인데 이걸로 생색을 내다니 아이가 이제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그렇다고 돈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나중에 돈 때문에 친구들한테 쪼잔하게 굴면 어쩌지. 온갖 걱정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내일 아침에 사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나도 겨우 잠이 든다.


아이도 나도 최고로 예민했던 신생아 시기. 그만 울고 대화해보는게 소원이었는데 대화가 되니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육아는 퀘스트의 연속이다.


육아는 천국을 업고 지옥을 건너는거라 했다. 처음 이 글귀를 읽고 지옥을 건넌다는 것보다 내가 천국을 업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았다. 그건 아마 내 아이가 나에게 천국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천국을 업고 있다니. 맞아. 천국이지.’

아이가 독립하기 전까지는 천국의 든든한 문지기가 되어 더 많이 손 잡고, 안아 주고, 웃어 주는 엄마가 되야지.

그리고 그 천국이 자신만의 천국을 만들러 떠날 때 웃으며 보내줘야지.


매거진의 이전글전업주부의 루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