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존재가 나타나
우리를 식량이나 장난감으로 다룬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인권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동물의 권리에 관한 논의」 이원영
이 글은 수의사 이원영 님의 에세이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중
「동물의 권리에 관한 논의」의 한 대목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읽었을 때 머릿속이 끔찍했습니다.
출근길 고속도로 위에서 경험했던 어떤 장면이 다시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트럭에는 빽빽하게 닭장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몸은 꼼짝도 못 한 채 얼굴만 간신히 바깥으로 내밀고 깃털을 휘날렸습니다.
양 끝에 있는 닭들은 그나마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었겠지만,
중간에 낀 닭들은 틈으로 내민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작은 숨구멍을 찾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단 한 번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은 채 죽음을 향해 질주하던 생명들.
닭장 트럭에 실려 가는 닭들은 날갯짓 한 번 펼치지 못한 채,
태어난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을 향해 달리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닭장 밖으로 삐져나온 작은 머리들과 나의 답답함이 묘하게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닭 때문에 갓길에 차를 세우고 서럽게 울었다고 하면 모두 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 틀 안에서 바쁘게 살고 있지만 정작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내 모습.
그리고 인간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동물의 권리를 고민하는 일은 결코 유난스러운 동정심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고민해 봐 할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도 고속도로를 달리다 간혹 트럭을 만나면
닭을 실은 차일까 봐 일부러 눈길을 피합니다.
여전히 그 장면을 생각하면 울컥하는 것은
아직도 내가 갇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일 겁니다.
우리는 인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는 아직 찬반이 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식량이나 장난감으로 대하는 더 강한 존재 앞에서
인권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닭을 식량으로만 생각한다면
더 강한 존재 앞에서 과연 우리의 자유와 권리는 얼마나 견고한 것일까요?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인구가 10명 중 3명인 시대입니다.
인간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는 서로 다른 듯하지만,
삶이라는 공통점 앞에서 그 권리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