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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침내 Jan 09. 2024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


수많은 결속으로 생겨난 가지들 사이의 텅 빈 공간 때문에 눈송이는 가볍다. 그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 가지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희게 보인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2021), p93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듯 눈이 내리는 공간에는 정말 소리가 없을까.


"눈 온다."

"어떻게 알아?"

내가 눈이 온다고 소리치면 실내에 함께 있던 누군가는 어떻게 아냐며 물었다.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려." 나는 말했다.

확인되지 않는 '쳇'소리와 함께 불신으로 우르르 몰려간 마음들이 창문을 열면, 정말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정말 눈 내리는 소리를 들었을까.


고요였다. 먹먹해지는 고요가 있었다. 외부 소음 제거 헤드폰을 켜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느껴지는 먹먹함 같은 것. 눈이 내리는 날에는 외부 소음 제거 모드로 나의 모든 세포가 변경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걷는 기분은 뽀드득하다. 얌전히 걸어가 뒤를 돌아보면 내 시간이 그러했음을 증명하듯이 서툴게 걸어 온 발자국이 보인다. 시간은 흐르고 또 살아 내듯이 지나온 발자국 위로 다시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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