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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ropsia Jul 13. 2024

후회, 공포, 불안(3)

과거, 현재, 미래

 후회는 대상이 과거에 존재하지만, 공포는 대상이 현재에 존재한다.


 모든 동물에게 공포의 궁극적인 대상은 죽음의 위험일 것이다. 야생동물의 경우는 포식자를 맞닥뜨렸을 때일 텐데, 이때 '놀람반사'는 대부분의 동물에서 나타나며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체 모든 기능이 반사적으로 죽음의 위기로부터 도망치는데 집중된다. 마치 제로백(zero-to-hundred) 테스트 때 자동차 엔진의 ‘RPM(Revolutions Per Minute)’이 치솟듯이 사지의 근육으로 혈액을 뿜어내기 위해 심장이 터져나갈 듯이 뛰기 시작한다. 심장이 피를 뿜어내는 압력이 혈관벽에 전달되면서 혈압도 무섭게 올라간다.


 오늘날 인간이 눈앞에 죽음의 위기를 맞닥뜨리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다. 나는 환자를 통해서 인간이 경험하는 '죽음의 위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갑자기 발생한 편마비(hemiparesis)로 뇌졸중이 의심되는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오면 의료진들이 체온, 혈압, 심장박동수, 그리고 호흡수 등의 활력 징후(vital sign)부터 먼저 측정한다. 측정된 혈압과 심장박동수는 정상 범위를 훨씬 벗어나 높고 빠른 경우들이 꽤 많다. 급성 뇌경색 환자들 중 많은 환자들이 고혈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응급실 도착 당시의 혈압은 매우 높다. 이런 현상의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가설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환자가 느끼는 '공포'이다. 편마비가 발생해서 스스로 걷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죽는 것이 아닐까?'라는 공포를 느끼고 유전자를 통해 우리 몸에 프로그램되어 있는 '도망쳐(run away)' 모드가 발동하는 것이다.


 야생에서 편마비 발생은 곧 죽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숲 속에서 편마비가 발생하여 바닥에 쓰러져 안간힘으로 기어가고 있는 인간을 상상해 보자. 털이라고는 머리, 팔, 다리 일부만 덮고 있고, 딱딱한 외피도 없이 말랑말랑한 몸인 데다가, 날카로운 송곳니나 뿔도 없는 동물...... 야생의 포식자에게 이보다 좋은 사냥감은 없을 것이다. 다행히 포식자에게는 발견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동료에게도 발견되지 못하면 굶어 죽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편마비가 발생한다고 해서 포식자에게 먹히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편마비라는 장애는 생계를 위한 직업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치명적이며, 특히나 사회안전장치가 미흡한 사회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야생의 시대든 문명의 시대든 공포의 대상은 현재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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