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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ropsia Jul 12. 2024

후회, 공포, 불안(2)

과거, 현재, 미래

 내가 만나왔던 환자들과 보호자들 중에는 지난 과거를 후회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은 과거에 건강을 돌보지 않았던 자신(환자) 또는 건강을 돌봐주지 못한 자신(보호자)을 후회했다. 그런데 진료를 하다 보면 그들의 속사정까지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정이어서 기억에 남아있는 한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약 10년 전쯤 급성뇌경색으로 입원했던 60대 중반의 남자분이었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얼굴도 훤칠하게 생긴 분이었다. 아내분도 나이에 비해 곱게 늙은 편이었다. 다행히 뇌손상이 크지 않아 회복이 빨랐고 퇴원할 때는 일반인들이 겉으로 봐서는 뇌경색이 발생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퇴원해서 수년간 외래 진료를 다녔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아내분이 남편의 기억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뇌경색이 재발한 것보다는 치매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인지기능검사를 시행했고 의심대로 치매였다. 치매약 복용을 시작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치매 증상은 조금씩 악화되었다. 한날은 남편이 강박적으로 양쪽 옆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해서 그걸 못하게 하느라 골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아내분이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희가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얘가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때 아직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여서 남편에게 아이를 다시 가지자고 이야기를 했는데...... 저이가 반대를 했어요. 그런데 지금 남편이 뇌경색에 치매까지 걸려서 제가 한시도 옆에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니까...... 그때 아이를 안 가졌던 게 정말 후회가 돼요. 저이는 젊었을 때 바람도 피우고 자기 하고 싶은 건 다하고 살았는데......(울먹이며) 이제 나도 노후에 하고 싶은 거 하고 친구들 만나고 그러고 살고 싶은데...... 저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고 그냥 콱 죽어버리면 좋겠다 싶은데 또 몸은 저렇게 건강하고......


 아내의 후회가 남편을 향한 원망과 미움까지 불러와 버렸다. 저 두 분을 외래 진료실에서 보지 못한 지가 꽤 된 거 같다. 이후로 어떤 삶이 그들에게 찾아왔는지 나도 더 이상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과거의 일에 붙잡혀 괴로워하던 아내분의 모습은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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