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요청하는 것만 도와주기
한 달 가까이 내 마음이 이렇게 괴로운 이유를 찾고 있는 중이다. 찝찝한 기분이 쌓일 때마다 왜 그런지 생각하다 보니 이제야 약간의 실마리를 알게 된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라는 책을 읽다가 이게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10억 가까운 빚을 지며 실패했다가, 연매출 5400억 원의 고속 성장을 이룬 켈리델리의 회장 켈리 최의 자서전이다. 첫 사업의 실패 원인 첫 번째로 그녀는 “누군가를 구제해줄 수 있다는 착각”을 꼽았다.
돌아보면 아직 나도 완전히 정착이 안 된 상황에서 누군가를 도와주겠다는 것 자체가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쿵 했다. 누군가의 인생을 구제해주려고 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굳이 상대방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정보나 도움까지 주려고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융통성이 필요하다. 하나의 일을 잘하기 위해 10가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시간이 촉박할 수 있고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럴 땐 3-4가지 정도로 타협을 해야 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10가지를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10가지를 다 하면 잘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하는. 모든 상황에서 10개를 다 할 수 없는 것인데 이 화살이 내 부족함으로 향해 나를 비난하는 생각이 쌓이고 쌓이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난 10가지를 다 알고 해낼 줄 아는 대단히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뽐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일에서도 삶에서도 원하는 건 다 이루어 내는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아직 난 부족한 게 많은 29살인데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대체 어디 있고,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데..
요즘 더더욱 급격하게 힘듦이 찾아온 이유는 어린 나이에 짧은 경력에 퇴사해서 이렇게 내 일을 잘 가꾸어 나가고 있다는 걸 입증하고 싶었던 것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상상한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압박감, 내가 한 말은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어딘가에 있을 경력 많고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부풀 어오를 대로 올라서 굳이 안 해줘도 되는 것 까지 해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돈을 받고 합당한 무언가를 해주는 건 당연하지만,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그 이상을 해주기 위해 나를 쥐어짜 내는 건 대체 누구를 위한 행동인가. 내가 나를 더 아껴줄 필요가 있다.
그동안 내가 완벽주의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실행해버릴 때가 허다하고, 어떠한 일을 디테일까지 다 챙기며 완벽하게 해내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고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들도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관련된 글과 책을 찾아보니 난 완벽주의가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높은 목표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 완벽주의는 일을 잘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하지만 이 완벽주의가 가져오는 괴로움의 원인을 찾기 위해 <네 명의 완벽주의자>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에서는 완벽주의자를 불행한 완벽주의자와 행복한 완벽주의자로 나누어 설명한다. 불행한 완벽주의자는 실패를 경험하면 그 탓을 자신에게 돌려 비난한다. 그 비난이 쌓이고 쌓여 이렇게 난 괴로움이 더더 커진 것이다.
행복한 완벽주의자들은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이들은 너무 버겁다고 느끼면 잠깐 쉬어갈 줄도 알고, 자신이 노력해도 완벽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힘을 빼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융통성 없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경직된 생각을 내려놓을 줄 안다.
따라서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의욕을 무조건 최고조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난 이제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다. 아마 회사를 퇴사하지 않았다면 높은 자리가 되고 나서야 깨달아서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빨리 깨달아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퇴사를 했기 때문에 증폭된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지만 난 더 행복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