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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Oct 03. 2021

행복한 완벽주의자

도움을 요청하는 것만 도와주기

한 달 가까이 내 마음이 이렇게 괴로운 이유를 찾고 있는 중이다. 찝찝한 기분이 쌓일 때마다 왜 그런지 생각하다 보니 이제야 약간의 실마리를 알게 된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라는 책을 읽다가 이게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은 10억 가까운 빚을 지며 실패했다가, 연매출 5400억 원의 고속 성장을 이룬 켈리델리의 회장 켈리 최의 자서전이다. 첫 사업의 실패 원인 첫 번째로 그녀는 “누군가를 구제해줄 수 있다는 착각”을 꼽았다.


돌아보면 아직 나도 완전히 정착이 안 된 상황에서 누군가를 도와주겠다는 것 자체가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쿵 했다. 누군가의 인생을 구제해주려고 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굳이 상대방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정보나 도움까지 주려고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융통성이 필요하다. 하나의 일을 잘하기 위해 10가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시간이 촉박할 수 있고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럴 땐 3-4가지 정도로 타협을 해야 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10가지를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10가지를 다 하면 잘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하는. 모든 상황에서 10개를 다 할 수 없는 것인데 이 화살이 내 부족함으로 향해 나를 비난하는 생각이 쌓이고 쌓이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난 10가지를 다 알고 해낼 줄 아는 대단히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뽐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일에서도 삶에서도 원하는 건 다 이루어 내는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아직 난 부족한 게 많은 29살인데 말이다. 그 누구에게도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대체 어디 있고,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데..


요즘 더더욱 급격하게 힘듦이 찾아온 이유는 어린 나이짧은 경력에 퇴사해서 이렇게  일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는  입증하고 싶었던  때문인  같다. 내가 상상한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압박감, 내가  말은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어딘가에 있을 경력 많고  잘하는 사람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부풀 어오를 대로 올라서 굳이  해줘도 되는  까지 해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돈을 받고 합당한 무언가를 해주는  당연하지만,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이상을 해주기 위해 나를 쥐어짜 내는  대체 누구를 위한 행동인가. 내가 나를  아껴줄 필요가 있다.


그동안 내가 완벽주의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실행해버릴 때가 허다하고, 어떠한 일을 디테일까지 다 챙기며 완벽하게 해내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고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들도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관련된 글과 책을 찾아보니 난 완벽주의가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높은 목표를 성취하고 싶은 욕망, 완벽주의는 일을 잘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하지만 이 완벽주의가 가져오는 괴로움의 원인을 찾기 위해 <네 명의 완벽주의자>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에서는 완벽주의자를 불행한 완벽주의자와 행복한 완벽주의자로 나누어 설명한다. 불행한 완벽주의자는 실패를 경험하면 그 탓을 자신에게 돌려 비난한다. 그 비난이 쌓이고 쌓여 이렇게 난 괴로움이 더더 커진 것이다.


행복한 완벽주의자들은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이들은 너무 버겁다고 느끼면 잠깐 쉬어갈 줄도 알고, 자신이 노력해도 완벽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힘을 빼도 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융통성 없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경직된 생각을 내려놓을 줄 안다.

따라서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의욕을 무조건 최고조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난 이제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되고 싶다. 아마 회사를 퇴사하지 않았다면 높은 자리가 되고 나서야 깨달아서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빨리 깨달아서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퇴사를 했기 때문에 증폭된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지만 난 더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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