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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Dec 11. 2019

본질을 추구하는 기업은 왜 성공하기 어려울까

100개가 넘는 기업을 만나고 나서 든 생각

작년 2월부터 100개가 넘는 기업을 만났다. 하루 평균 1.5개, 많으면 4개까지 만났으니 족히 200개는 되지 않을까. 초기 기업부터 대기업, 제조사부터 유통사, 내 말을 이해한 척하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담당자부터, 생각해본 적 없는 높은 차원의 질문에 당황하게 만드는 담당자까지 너무 많은 경우의 수를 겪었다. 잠깐의 미팅에서도 배우는 게 하나씩은 있는데, 매번 샤워하면서 생각하고 흘려보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은 남은 생각을 짧게 남겨보려는데 앉아서 타자를 치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엄청나게 뿌듯함.


오늘 만난 기업은 특히나 나이스 한 분이어서 함께 이야기 나눈 시간이 무척 좋았다. 마침 몇 시간 전에, 연락이 안 돼서 일을 하겠냐며 정작 초록창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질문을 하고는 괜히 짜증을 내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일까. 아무튼 하나라도 더 알려드리고 싶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한 시간을 꽉 채워 떠들었다.


십 년 넘게 대기업에 OEM으로 제품을 납품하는 곳이었는데, 작년에 브랜드를 직접 만드셨다. 공장과 함께 상생하고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목표였다. 정기적인 프로젝트로 주문량을 늘려 공장의 긴긴 휴식기를 줄이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공장과의 오랜 협업으로 퀄리티에 자신감이 있으셨다. 이 프로젝트가 잘만 되면, 일반 소비자는 비싸게 주고 사는 제품을, 대기업 브랜드값(유통 광고비 등등)을 빼고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가격도 싼데 고퀄리티다?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런 곳은 일반 소비자를 설득하기 쉽지 않다.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된 통계지만 1) 제품들 잘 만드는 곳은 2) 유통과 마케팅을 잘 모른다. 아니 잘 모른다기 보단 거기까지 손을 뻗기에는 너무 팔이 짧다. 인간이 갖고 있는 시간과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고용하기에도, 초기 기업에겐 너무 많은 비용과 부담이 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정말 본질을 추구하는 기업은 성공하기가 더더욱 쉽지 않다. 발품 팔아 좋은 제품을 만들고 나서, 시간과 비용이 부족해 허름한 포장지로 감싸게 되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포장을 멋들어지게 하는 곳이 수두룩한데, 포장지를 열어서 다 뜯어보고 사는 사람은 한 줌뿐이니. 물론 언젠가는, 여러 가지 운과 상황이 따라준다면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함께 일을 하는 입장에서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런 기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너무 귀한 곳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언젠간 알아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앉아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딱 어울리는 포장지를 찾아주고 싶다.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지름길은 없을까? 힌트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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