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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Feb 25. 2020

3달 뒤에나 배송이 된다는 신발을 산 이유

"기다려줄까요?" 기다릴 이유가 있다면요.

작년 11월에 신발을 샀다. 해가 지나고 2월이 된 지금,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언제오나 손꼽아 기다리던 날도 지났다. 오겠거니-하는 상태다. 집 앞에 뿅 하고 나타나면 선물처럼 느껴질 것 같다. 주문한지 1시간도 안되어 도착하기도 하는, 2일이 넘으면 배송지연이 아니냐고 문의 글을 남기게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3달 뒤에나 온다는 신발을 산 이유는 뭐였을까.


내가 산, 정확하게는 펀딩한 신발은 제누이오라는 브랜드의 하얀색 스니커즈다. 매일 아침 옷을 골라야 하는 모두가 잘 알겠지만 하얀색 스니커즈는 만능이다. 영 이상한 옷을 입어도 하얀색 스니커즈를 신으면 마무리가 깔끔하다. 무채색의 마법이랄까. 특히 앞코까지 얄쌍하게 빠진 스니커즈는 정장에도 캐주얼에도 휘황찬란한 옷에도 다 스며든다. 하지만 그만큼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스니커즈는 찾기가 어렵다. 몇 년 간 장만하지 못하던 차에 제누이오의 스니커즈를 발견했다.


제누이오는 이탈리아 장인이 직접 만든 최고 품질의 럭셔리 패션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제누이오의 신발은 이탈리아의 럭셔리 신발 제작의 중심지인 마르케에서 만든다. 서포터인 나는 프라다와 처치스라는 명품 브랜드 신발과 동급 퀄리티의 신발을 10만원대 초반으로 살 수 있었다. 백화점에서 7-80만원을 호가하는 신발 퀄리티를 말이다. 말하자면 50만원 이상 세이브가 되는데, 3달이야 뭐.



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일한다. 와디즈에서 펀딩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그 펀딩을 잘 만들어내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댄다. 제누이오는 나의 제안으로 와디즈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제목 하나를 짓는데도, 스토리 하나를 쓰는데도 수많은 후보군 중 고르느라 애를 먹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더 기다려줄지, 진정성을 알아줄지, 새소식에 글 하나 작성을 할 때도 두세번의 피드백이 오고갔다.


"만드는 게 몇 달은 걸리는데 사람들이 기다려줄까요?"

크라우드펀딩을 하고 싶다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 꼭 듣는 질문이다. 답은 없다. 그게 기다릴만한 제품이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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