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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Dec 29. 2021

죽음을 밀어내는 인간

2가지 형태의 공황장애와 광장공포

공황장애가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겪은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병이라는 것을 알아서 가끔 내가 급하게 약을 꺼내먹을 땐 최대한 내가 지을 수 있는 괜찮은 표정으로 천식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천식은 이미 다 나았으면서.


정신적인 질환은 누구나 한 번씩은 얕게라도 앓는다지만 다른 암환자나 외상환자들에 비하면 내 병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아서 치부 같이 느껴진다. 그들은 정말 언제 떠날지 모르는 죽음의 경계에 있는 병인데, 나는 나 혼자가 만들어낸 공포에 멀쩡한데도 죽을 것처럼 숨을 못 쉰다고 난리 치는 것만 같아서.


최근엔 약을 먹은 적이 없어서 괜찮아지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그런 거였다. 어쩌면 내가 이대로 소위 말하는 히키코모리가 되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


정신질환 같은 건 팔자 편한 사람들이나 겪는다던데 옛날엔 그 말을 듣고 '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지껄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냉정하지만 실은 그가 옳았나 싶기도 하다.


어제 남자 친구를 집에 보내고 나는 졸린데도 잠들지 못했다. 잠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잠들면 깨어났을 때 개운하지 않을 것 같아서. 잠들면 울면서 깰 것 같아서. 나는 남자 친구가 놓고 간 티셔츠를 얼굴에 덮어놓고 냄새를 맡다가 새벽 6시가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사실 그날 남자 친구를 재우고 새벽에 친구랑 대화를 했었는데, 교수 얘기에서 끝날 얘기가 어쩌다 길어졌다. 원래부터 진로 고민이 많았던 친구였는데 갑자기 내게 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뭘 하고 싶냐는 말에 죽고 싶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제발 혹시 내가 죽어도 사람들이 유난을 떨고 ‘걔 죽었대’라고 하지 말고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30분 전에도 어떻게 죽어야 확실히 죽을 수 있는지 찾아보고 있었다고 곧이곧대로 대답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또 질리는 인간이 될 것 같아서. 얘 입에서 '제발'이라는 단어를 듣는 게 힘들어서.


낮밤이 바뀐 채로 늦게 자고 오후 5시쯤 일어나서 본가로 가기 위해 홍대역으로 갔다. 늦은 시간의 홍대역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원래 늘 그래 왔는데도 사람들이 버스에 많이 타니까 죽을 것 같은 기분이 숨겨지질 않았다. 입석도 더 이상 타지 못할 정도로 버스가 만원이었다.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저씨가 문 닫는 동시에 더 이상 못 탈 것 같아서 기사님께 급하게 내린다고 했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내리는 것도 어려웠다. 점점 숨이 가빠지는데 아저씨는 왜 이제야 내리냐며 화를 낸다. 나는 소리쳤다. 문 여세요. 사람 죽어요. 아저씨는 예상하지 못한 큰 소리에 놀랐지만 이내 또 화를 내며 문을 열었다. 나는 저런 버스 기사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광장공포증이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도 다른 버스를 타려 줄을 서있는 사람이 정류장에 거진 100명은 넘었다. 밤의 가로등은 눈이 부셨고, 내리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더 힘들어졌다. 하차 카드도 못 찍고 에어팟 한쪽을 잃어버리고 그런 건 문제가 되질 않았다. 멀리가지 못하고 바로 앞의 길 가장자리에 주저앉고는, 의식이 흐려지는 게 느껴지는 게 미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데 저들은 갑자기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 술에 취한 여자로 보였을 거다. 엄마... 엄마... 엄마에게 전화해야 한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속으로 ‘죽여봐. 난 괜찮아. 숨도 쉬고 있어. 어차피 안 죽어. 조금 있으면 멀쩡해지니까 놀라지 말자.’라고 되풀이했다. 숨을 점점 고르게 쉬면 괜찮아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차분해지지 못했다. 숨이 원하는 대로 안 쉬어졌다. 시야가 흐려지는데 쓰러지지 않으려 할 때마다 나 혼자가 미치려고 한다. 숨을 쉬려고 하면 자꾸만 눈물이 났다.

"여보세요?"

나는 숨을 쉬느라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심했던 적이 없는데 그렇게 울고만 있었다.

"해열아, 어디야."

엄마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살려주세요라고 대답을 하려는데 말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참고 있던 비명이 나왔다. 소리를 지르는 내 입을 손으로 막으며 참는데 어떻게 보면 타인들은 더 흉측스럽다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을. 119 좀 불러달라고 말을 하려 할 때마다 그게 아니라 비명이 나왔다. 진정제가 어딨지? 아까 한 알 먹었는데. 떨리는 손에서 약이 몇 개가 나왔는지도 세지 않고 나오는 대로 먹었다.

"여보세요? 해열아, 지금 어디야. 119 불러 빨리. 옆에 사람 없니? 아무나 바꿔봐."

"합정역. 합정역이요."

퇴근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해야 하기에 30명이 넘는 줄을 서고 있는데 누가 전활 받아주겠어. 이대로 더 지체되면 내가 쓰러진다.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손이 내게 괜찮냐며 다가오고서야 나는 진정할 수 있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죄송한데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

아저씨는 구급차를 부르고선 괜찮아질 거라고 등을 토닥였다. 토할 것 같았다. 토사물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서러움이 나올 것 같은.

나는 비명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참으며 그 속에 단어를 섞어냈다.

"죄송해요, 제가 공황장애가 있는데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복압 때문에 새어 나오는 비명을 손으로 막았다.

"아이고 아가씨. 말하려 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아이고... 저도 공황장애가 있어요. 갑자기 그렇게 찾아오죠? 마스크 잠깐 벗고 숨을 크게 쉬어봐요. 괜찮을 수 있어요. 잠깐만 말하지 말고 진정해봐요. 좀 있으면 119 와요."


그 말이 진짠지 공감을 하기 위한 가짠지는 모르겠는데 그땐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스스로 치유되지 못하는 것들은 같은 고민을 가진 타인에게서 이해받으며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나 보다 똑똑하고 훌륭해서 내게 대단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잠깐 지나가는 사람이더라도 그냥 자꾸 계속 옆에서 괜찮다고 해줄 사람. 나는 죽음을 갈망하다가도 눈앞의 죽음을 보면 두려워하는 겁쟁이에 모순적인 인간이었다.


구급차가 오고 5분 정도 차 안에서 구급대원은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물었다. 그리고 이미 다 아는 얘기를 듣고. 딱히 응급실로 가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곳을 가도 의사는 내게 해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어렸을 때 밤마다 달을 보며 생각했다. 어떤 명의도 내 병을 알아내고 고칠 수 없다고. 그래, 누구도 날 도울 수 없다. 어디까지나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구급대원은 엄마가 오실 때까지 안에서 기다려도 되고, 상태가 괜찮으면 가봐도 된다고 하시는데 생각해보면 엄마는 집에서 30분 거리인 합정까지 와야 했다. 그럼 30분 동안 구급차 안에 있어야 한다는 얘긴데, 난 이미 진정이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다른 곳의 누군가는 죽어가며 정말 구급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난 왜 병을 걸려도 이딴거나 걸리지. 제3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멀쩡하던 사람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죽을 것만 같다고 발작하는데 그걸 이해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공포는 늘 모습을 바꾸곤, 여러 형태의 낯선 얼굴로 찾아와 정신을 흐리게 만들어놓았다.


어쩌면 한동안 약을 먹지 않고 지내왔다는 건, 괜찮아진 게 아니라 내가 사람 없는 곳과 집에서만 지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구급차에서 내리겠다고 하고 얼마 안 지나서 모친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방금까지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하다. 나라는 사람이 모순적인 게 아니라고 우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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