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화장실, 나의 집, 나의 피난처.
질투는 별로 느껴본 적이 없지만 학대는 내게 친숙하다. 특히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는.
나는 생각보다 매우 약하고 약하고 어리고 어리고
무엇보다도 손상의 개념에선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들 다 맞고 사는걸 내가 학대라 생각했을 수도.
혹은 반대로 학대를 당하면서 일반인의 범주에 들게 마음의 굳은살로 단단해진 걸 수도 있다.
나는 화장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엔 방광염에 걸려 잔뇨감에 계속 나가지 못했던 건데
이 뒤로는
잔뇨가 남아있지 않았음에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엔 화장실 밖으로 못 나갔다.
보통은 도서관에 갔겠지만 실습하러 나온 이 병원엔 도서관 따윈 없었다.
그래서
이 글도 화장실에서 쓰고 있고.
나는 스터디카페의 독립 1인석도 화장실 칸 속이라 느꼈다. 그 안에서 공부하는 느낌.
나는 뭘 하고 살았나.
죽기 전까진 여기서 안꺼내주겠다고 말하던 여자.
사촌동생 집 옷장에 박혀서 맞고 갇히고
백화점에서 모친의 손에 끌려가 화장실에서 맞고
집 화장실 샤워부스에서도 맞고
좁은 곳이나 화장실은 언제나 죽음과 가까운 장소였다.
어둡고 혼자선 못 나오는 내 손.
죽음은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곳.
죽고 싶으면 화장실을 들어가면 되었는데
이제는 가장 편한 공간이 화장실이 되었다.
그때는 거기가 제일 무서웠는데.
학대당하며 자란 여자들이 꼭 폭력적인 남자와 결혼한댔는데,
그게 부친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부정을 한 번에 갈구할 수 있는 수단이자 가까운 폭행의 장소였다.
나도 그러려나.
화장실도 이젠 가장 편한데.
모친이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이런 말을 한다.
“히이..!(놀라는 감탄사) 어떤 애가 학교폭력으로 대인공포증이 생겨서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서 있다가 나왔대. “
나는 모친이 그런 거에 놀랐다는 게 더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