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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Jul 11. 2023

자신의 후짐을 견뎌내는 일

무언가에 미치고 몰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는 그동안 만들고 싶었던 복근과 유연성 사이드 스플릿을 달성하려 미친 듯이 운동을 했고, 주말에는 핸드폰을 아예 꺼놓고 화실을 하루 전체를 대관하여 늦은 밤까지 작품 작업을 했다. 밤에 적적할 땐 중국에서 잠시 교환학생으로 온 아이와 전화도 하고 어떤 날은 간간히 신춘문예에 제출할 원고도 집필했다.


너무 열심히 사는 거 아니냐고?


이렇게 살아도 나는 뭔가를 이루거나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현실적으로 미술로 유명해질 리도 없고 형편없는 실력으로 발레단을 입단할 것도 아니고 등단하지도 못할 거라서. 그래서 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모두 주제를 모르고 뛰어든 취미이자 뻘짓일 뿐.)



    어렸을 때부터 유독 점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런 미신을 싫어하는 우리 집에서 내가 중학교 입학하던 날 처음으로 몰래 점을 봤다.

넌, 예체능 쪽으로 가야 한다고. 그게 천직이자, 너도 살고 돈을 버는 길이라고.



그때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맞아요. 저도 예체능 그쪽인데, 우리 집에 예체능계 사람이 없어서 부모님이 반대하고 안 키워 줄 것 같아요. 저희 집 거지예요."라고 동문서답 말했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 주말에 그 넓고 고요한 화실을 나 홀로 채워나가다 보니 이제야 그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부모님은 내가 만든 작품이라고 보여드리면

‘그걸 네가 그렸다고?(만들었다고?) 에이 무슨. 거짓말 치지 마’라고 믿지도 안으신다-_- 조금 속상할 뻔. (은 사실 거짓말이고 속상하다.)

그림은 중학교 2학년 이후로 학원을 다니지 않았고 조소나 조각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으니 모친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다만 유튜브 보면서 좀 익히면서 따라한거긴 한데.



누군가가 내게 예술이란 어떤 것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예술은 자신의 후짐을 견디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영적인 감각이나 그런 비슷한 부류의 영감이 발달된 사람들에게서 눈에 띄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생각들이 곧 죄가 된다는 것이었다.


틀린 말, 엉뚱한 대답, 미친 사람.

그러나 실상은 전혀 가공되어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잘 몰랐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비슷하게 미쳐본 사람은 안다.

오, 예리한 질문이군.라고 생각하면서.

어렸을 땐

저 사람들이 왜 비난을 하는 거지 의문을 가지면서도,

성인이 된 시점에 와서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데 조금만 더 다듬어서 발표해 보지

라는 안타까움도 생겨났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자, 가시화할 수 있는 방안이 곧 예술이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일수록 잘 믿고 잘 속고 잘 이해하니까.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면 글을 쓰면서 풀어낼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은 춤이나 연기로 표출할 수도 있는 거고

또 어떤 사람은 음악을 만들어서 혹은, 연기 연주를 하면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영감이 뛰어나고 섬세하고 예민하며 여린 사람들이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보이는 예체능계에 흥미를 보였다가

매일매일을 자신의 후짐을 견뎌내는 삶을 살게 된다면 안 미칠 수 없는 삶이었다.



미술관, 혹은 깊은 소설, 작가의 바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으며 난해하다고 이상한 작품이라고 저 화가(작가)는 미친 사람 같다고 말하며 감정을 무시하는 그런 무식하고 천박한 사람이 아니라.


어쨌거나, 같이 갔던 친구와 늦은 점심을 먹으며 한참 동안 작품에 관한 깊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나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이 사람은 미술을 배워본 사람도 아니었으면서

늦은 나이에 갑자기 미술에 뛰어들 용기가 있었을까.

이 사람은 이렇게 전 세계로 유명해질 줄 알고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겨우 빌린 오디오 해설은 전혀 감상에 도움이 되진 못했다.



이 모든 생각들은 곧 하나로 귀결되었다.

난 뭐해먹고살아야 하지

아마 내 나이와 비슷한 모든 젊은 층 사람들도 다 이 생각을 하려나.



만약 어느 날 누군가가 내게

내 인생 실패 요인을 되돌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도 아닌,

무척 잘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실패한 삶일 거라고 자신 있게 적어낼 수 있다.

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사진을 너무 못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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