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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Jun 18. 2024

엄마의 발닦개

제목이 이래도 되나 싶지만

부친은 마흔이 넘었을 때까지도 덜 자란 남학생 같았다.

으레 대부분의 남자 아이들이 학창시절에 서열 싸움을 하지만 예상컨대 부친은 그곳에서 도태된 편이었을거다.

그것은 모친의 뇌피셜이나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고모 이야기에 의한 예측이다.


부친은 그런 곳에서 채우지 못한 결핍을 가정에서 채우고 싶어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가장의 노릇을 하지 못한채 모든 주도권이 모친에게 있으니, 그녀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부친쪽으로 기울이면 사족을 못쓰곤 했으니까.

돌이켜보면 불쌍한 사람이기도 했다.




모친이 잘했던 것은, 편가르기였다.

좋게 말해서 편가르기지, 소위 요즘말로 정치질, 이지매와 비슷한 성격의 놀이였다.


매일 부친과 빚는 갈등을 내게 새뇌하듯 그의 문제점을 나열했고,

내가 동의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그를 동정하는 성격의 말을 하면 모친은 그건 불쌍한게 아니라 멍청한거라고 다시 날 설득했고

그럼에도 내가 뒷담화는 나쁜거라고 그러면 안된다고 엄마를 가르치려 들거나 동조하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내가 정치질을 당했다.



그렇게 내가 고립이 되고 모친이 부친에게 단둘이 외식을 하자며 어디서 무슨 음식을 먹자고 하면

부친은 아이같은 웃음을 지으며 무조건적으로 좋아했다.

부친은 그곳에서 얻은 기회를 놓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내게서 틀어져 나온 부스러기인줄도 모르고.


그리고 그는 거기서 더 나아가 모친의 편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니까짓게 내 배우자에게 대들어? 뭐 이런 오글거리는 말들.

나는 어쩌면 학교에서 따돌림을 멈추자고 나서는 아이가 왜 나 말고는 없었는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결국 내가 따돌림을 당해야하는 책임을 져야했지만

마흔살 남자도 선뜻 해내지 못하는데 십대들이 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부친은 쓸모없는 찐따다“라는 맥락의 세뇌를 지속적으로 몇십년간 모친에게 들어왔으니

나는 저절로 그를 기피하고 깔보고 무시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모친은 내 머릿속에서 상향평준화 되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비판적인 사고로 볼 줄 아는 똑똑한 사람.



“니가 싸가지가 없어서 부친에게 하는 꼬라지가 그런거지 왜 엄마탓, 세뇌 타령이냐“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확실한건, 난 처음부터 부친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커서 느낀건

모친이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게 아니라

비관적이고 멍청한 인간이었다.

똑똑했다면 아빠같은 인간을 만났을리 없으니까 말이다.

설령 엄마가 똑똑했었다고 쳐도, 남자보는 눈은 정녕 없었다.



그러다 발생한게 다음 사건이었다.


하루는 모친은 다 커서 대학생이 된 나를 학교에 태워다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 차를 타고 등교를 하는 1시간 40분 내내 모친의 나르시시트들이나 할법한 말들을 들었다.


대충

다 큰 대학생 딸년을 아직도 태워주는 엄마가 어딨냐

난 너무 착한 것 같다

다른 엄마들이 들으면 놀랄거다.

다른 애들은 이런 엄마가 있어서 널 부러워할거다.

네가 성격이 나쁜건 엄마가 너 해달라는걸 너무 다 들어주고 해줘서 그렇게 된거다

이런 식의 내용들이었다.


처음엔 아, 네 네 거리다가

마지막 말은 참을 수 없었다.

단언컨대 나는 모친에게서 독립적인 성격이었고,

무엇이든 혼자 해결하고 싶어하는 성격이었는데

모친은 그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고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내서

한 번이라도 내가 자의로 무언가 선택하는 일이 발생하면

내 선택에 대해서 비난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때 동아리를 플룻에서 오케스트라로 바꿨더니 잘못된 선택이라며 왜 상의 안했냐고 엄청 욕먹음)



또 내가 사달라고 한 적도 없는 고가의 물건들을 사줘놓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부러워하겠냐며 고마움을 강요했다.


늘 강조하지만 그 나이대에 필요한게 있고 필요 없는 게 있다.

신상아에게 샤넬백을 선물해줬다고 인스타에선 모두가 부러워하겠지만 정작 그 신생아는 분유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모친은 내게 비싼 물건들을 선물해줘서 고마움을 강요했지만


내가 필요한건 가족간의 대화였다고.

그 씹할 빌어먹을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결코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만일 내가 태어났을때 인스타가 있었다면 모친은 분명 내가 태어난 날 인스타에 샤넬 기저귀 같은거나 해서 올려놓고 정작 밥을 안줬을거다.




결국 나는 그 날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엄마가 사람들 앞에서 친절한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할 수 있었던 모든 이유는

내가 당신 친절을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을 알아야하고 그것은 모두 다 내 덕분이니 오히려 고마워해야한다.

그리고 난 엄마에게 단한번도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고, 엄마때문에 난 아직도 20살인데도 애새끼같은 짓을 하면서 얼굴도 모르는 당신 엄마 친구들에 욕먹고 살아간다.

내 독립성을 상실하게 만든 전적인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

(물론 내 성격에 저건 진심도 아니고 고마움을 받고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화는 내가 내고 싶은대로 내야한다.)


결국 그 사건으로 인해 모친은 또 쪼르르 부친에게 달려갔고,

부친은 “부부는 일심동체야. 그 모욕은 나에게 한것과도 같아”라는 정말 시답잖은 개소리만 늘어놔서 토악질이 나왔다.

화를 내도 진짜 찐따같이 내는



어디서도 못해본 짱노릇(?)을 밖에서도 못하고 집에서도 못하는


그러니까,

부친은 정말 불쌍하고 모친의 충실한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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