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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열 Jul 10. 2024

혜림이

지금 이 글이랑 최근 요근래 쓴 글들이 다 중간에 맥락에서 벗어난 이야기나 전개가 이상한 글들이 있는데, 요즘 글 교정을 거치지 않고 쓴대로 바로 올려서 글이 좀 이상합니다. 언제까지 이럴지는 모르겠는데, 브런치가 독촉을 해서 그냥 쓰는대로 바로 올릴거라 이해 부탁드립니다.



재수학원은 나에게 방공호, 화장실 그 이상의 안식처 같은 장소가 되었다.

입학 초기엔 자습을 제외한 수업 쉬는 시간마다 강의실 옆 화장실로 숨었는데 이제는 볼 일을 보러 갈 때 말고는 수업에 몰두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언제 딱 한 번 날씨가 좋아서 교보문고에 책도 살 겸 낮에 외출증을 끊고 나간 적이 있었는데,

왠지 내가 느꼈던 그 토요일 낮의 거리는 자꾸만 공허함이나 처음 보는 두려움 따위 같은 감정들이 몰려들어서 빨리 학원으로 돌아왔던 적도 있었다.


습관처럼 부르던 10cm의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라는 노래의 가사가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너무 바빠서 우울할 틈도 없다는 거.


재수학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순수했고, 착했으며 나처럼 공부만 해온 아이들이 많았다.

그 중 혜림이는 나 보다 한 살이 어렸는데, 한두번 수업 자료와 관련해서 말을 몇 번 섞다가 짝꿍이 된 시점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다.

정확히는 ‘나를 기피하지 않아줘서’ 가까워질 수 있었던 셈이었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수업 시작 시간보다 혜림이가 더 일찍 온 날 매번 본인의 것과 내가 받아야 할 교재도 매주 챙겨주면서 시작된 안면트기였다.

어느정도 친분이 쌓였을 땐 점심도 같이 먹었는데, 그때 혜림이는 그 날을 복기했다.

“언니 처음 봤을 땐 무서웠는데, 저번에 웃는거 보고 괜찮아졌어요. 귀여운 것 같기도..”

무의식중에 나오는 낯가림, 방어기제 이런 것들이 혜림이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저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땐 진짜 힘들었는데.


그러나 한 번씩 나도 모르게 나오는 어떤 행동들이 자꾸만 멀쩡한척 연기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를테면,

선생님이 내 바로 앞에서 소매를 걷으려고 팔을 들어올렸을 때,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리는 회피 반응을 보인다던지

상대방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을 할 때 말을 조리있게 못한다던지

책을 받을 때 상대방이 책을 안놔줘서 상대방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두 손으로 고쳐서 다시 받던지.



하루는 이런 대화를 했다.

“여기선 선생님들한테 쌤 제가 잘해올게요! 라고 실없이 다짐해도 다 긍정적으로 받아주고 우쭈쭈 해줘서 좋아.”

이랬더니 혜림이가 “우쭈쭈 해주신다고요?!” 이러면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면 나는 내가 있던 곳이 유독 각박했다고 말은 못하지만 대충 모면하려

“아, 그냥 화 안내면 다 우쭈쭈지 뭘. 공부 못해도 격려도 해주시는데“ 이러면서 넘어간다.

그러면 다행히 그녀도

“어떤 삶을 살아온 것입니까 언뉘…“ 이러고 넘어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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