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걸 이제 내는 거야?
나: 아 그게요, 원래 제때 작성해서 냈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선 논술만 쓸거면 굳이 상담은 필요 없을거라 하셔서 말았는데, 혹시 제가 더 쓸 수 있는 학교가 있으면 내보고 싶어서요.
원래 4월 중순에 조금 이르게 수시 지원 내역서를 모두에게 걷었었다.
학생부나 내신이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상담 및 정보 제공 차원에서 재수학원은 이맘때쯤 학생부를 떼어오라고 한다.
수시 지원 내역서에는 크게 총 네 가지를 기입해야한다.
1. 졸업 (출신) 고등학교
2. 작년 지원 학교 및 합불 여부, 예비번호까지
3. 수능성적
4. 올해 지원 희망 학교, 과, 전형 6곳
그런데 대학교를 막 졸업해서 바로 온 내가 기입할 수 있었던건 종이 맨 밑 칸 올해 지원 희망 학교 6개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무작정 4곳만 생각해왔던지라, 나머지 2학교는 빈칸으로 놔뒀다.
나는 거의 백지에 가까운 상태의 수시 카드로 상담을 신청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검정고시 성적밖에 없었기에
학교마다 다른 내신 산출 공식, 지원 가능한 학교 여부, 합격 가능선 등등 혼자서 알아보기엔 시간 및 자료의 양이 너무 방대하였다.
선생님은 내 수시 지원 내역서를 본 상태에서 여러 번의 충격을 받으셨다.
선생님: 아니 그래도 작년에 지원한 학교가 있을거아냐. 이거라도 써와야지 다 비워놓으면 어떡해.
나:아 그게요,,, 제가 대학 다니느라 수능을 안봐서 성적도 없고요,,, 지원한 학교도 없어요. 대학교 졸업을 이미 하고 와서…오랜만에 수능을 보는 거예요.
선생님: 뭐? 너 몇 살인데?
나: 저 01년생 24입니다.
선생님: 뭐라고? 01? 잠만 01이… 너가 01이라고? 어어엉?! 학교는 또 검정고시?! 너 앉아봐 얘기좀 하자.
얼굴은 많이 쳐줘봐야 3수생처럼 보이는데 5년 만에 수능에 뛰어든 01년생이라는 것에서 1차 충격
수시 카드를 봤는데 출신 지원 고교 대신 “기타 학력 검정고시” 라고 써놓은 것에서 2차 충격
원랜 따로 스케줄이 이후에 잡히는데 이 충격들에 잠깐 앉아보라고 하셔서 즉흥적으로 상담이 시작되었고,
내 성적표 데이터를 다운 받아서 열어 보시곤 3차 충격을 받으셨다.
나는 선생님의 충격이 이해가 가면서도 부끄러웠다.
선생님은 질문이 많으셨고, 나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지만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었다.
내가 현재 다니는 학원은 재수생이라면 거의 모두 알만한 상위권 학원이었고,
이 학원은 이전에 19살 혹은 삼수생도 받지 않기로 매우 까다로웠어서
검정고시생의 수시 지원이라는 데이터가 아예 없었다.
소위 말하는 ‘나때는’ 학교 지원할 때 비교내신으로 넣을 수 있는 학교가 좀 많았는데
현재는 너무도 달라진 입시에 이 검정고시라는 학력은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적막이 흐를 때마다 나는 어색함에 책임감을 느끼곤
“아하하…제가 유시험으로 들어와서”라는 말만 습관적으로 반복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그럴때마다
“야. 여기 있는 애들이 다 잘하는 줄 아냐”라며 덮어 넘겨버렸다.
검정고시가 수시 지원을 한다는 드문 케이스를 놓고 고민하는 와중에 선생님은 말을 예쁘게 하시는 능력이 있으셨다.
“네가 한 번 넣어서 최저 맞추고 붙으면 개척자, 혁명가가 되는거고,
떨어지면 겸허히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뭐. 일단 성적 보고 써보자.“
혹은
“일단 네가 써본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이제부터 최대한 알아볼게. 이게 워낙 드문 케이스라…그리고 걸리는게 있으면 바로 해열이한테 먼저 알려줄게. 9모 보고 한 번 약속 잡지 말고 그냥 내려와. 상담 한 번 더 하자.“
라고 말씀하시거나,
처음에는 수학 33점, 영어 4등급, 국어 5등급에서 시작했는데
현재는 수학이 60점대, 영어는 한결같은 2, 국어는 2,3등급 나오는 내 성적을 보시곤
”네 성적 보니까 4개월 동안 이렇게나 올린거면….노력을 진짜 정말 많이 했겠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수능에서 총 5가지 과목을 처음부터 한꺼번에공부를 하는건데…처음부터 전부 1등급이 나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너는 아마 성적이 수능날에 가서야 최고점을 찍을 것 같아서 내가 섣불리 평가는 못하겠다. 가봐야 알 것 같아.“ 라고 말씀하신다.
19살때 다녔던 재수학원에선 담임선생님 조차도 ‘풉’하는 웃음을 참는 소리를 내거나
‘네 성적으로..?’라며 종종 무시를 하셨는데.
뿐만 아니라 이틀 전에도 모친은 공부를 너무 안한다며 핀잔을 주고 매번 부족하다는 소리만 늘어놓는데.
처음으로 들은 그 인정이 단비같이 느껴졌다.
설령 선생님이 막연하게 위로차 하는 진심을 위조한 인정이었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크게 느껴졌다.
속아야했다.그렇게라도 내가 나를 철썩같이 믿어야했다.
다들 몰라줘도 나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선생님은 그 대신에 타 학생들의 학생부의 두께를 대충 보여주시거나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정보량에 대해서 직접 보여주시면서
돌려말해주셨다.
세심한 배려가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지켜봐왔는지 알 수 있게 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귀를 생각해서 낮은 귓속말로 내쪽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그래서 대학교 어디 무슨과 나왔어?”라고 조용히 조심히 물어보는 배려.
아쉽지만 결론은 학원 입결 통계나, 각 대학의 입학처에서도 어떤 학생들이 뽑혔는지에 대해 모두 비공개처리를 해서 일단 모르는 일이라고도 가능성만 열어놓으셨다.
나는 그런 모호한 대답에 알것도 같았고 모를 것도 같았다.
동시에 줄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며 미안해하시던 선생님.
나는 덕분에 상관이 없었다.
말이 얼마나 “아” 다르고 “어”다른지 실감이 났다.
모친이나 다른 사람 처럼
“너 성적으로 쓸 수 있는 곳이 어딘데”
“성적이나 만들어놓고 얘기하던가 그럼”
“검정고시가 무슨 수시야. 봐줄게 뭐가 있다고 걔가 어떤 앤줄 알고 뽑니ㅋㅋㅋ“
이런 내 전의를 모두 꺾어버리는 현실적인 말 보다
비록 실질적인 도움은 없었어도 조곤 조곤한 별 거 아닌 선생님 그 배려랑 다정함 같은거.
나에겐 그게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일단 3합4를 만들어놓고 나서 다시 상담을 하러 가는 방법 밖엔 없었다.
덕분에 그 날은 평소보다 더 몰입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